‘아랍의 봄’ 민주화 후폭풍… 미국 중동외교 흔들

입력 2011-09-18 23:55

‘아랍의 봄’으로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정치 지형도가 바뀌면서 미국이 이 지역 외교 전략을 수립하는 데 고전하고 있다. 군부를 이용해 ‘반(反)이스라엘’ 민심을 눌러 오던 이전의 외교 전략에 한계가 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팔레스타인 국가지위 승인에 대한 유엔 표결까지 다가오면서 미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아랍권의 변화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라며 “그간의 외교 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최근 이 지역 외교에서 더욱 난처한 처지에 몰린 것은 그간 이스라엘과 우호관계를 유지해오던 터키와 이집트까지 이스라엘에 등을 돌리면서다. 이스라엘·이집트·터키는 미국의 아랍권 핵심 우방이다.

지난해 5월 이스라엘이 터키 구호선박을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틀어지기 시작한 이스라엘·터키의 외교관계는 지난 2일 이 사고에 관한 유엔 조사보고서가 공개된 후 급속히 악화됐다.

보고서가 이스라엘의 과잉대응을 지적했음에도 이스라엘이 사과를 거부하자 터키는 초강경책으로 맞받아쳤다. 이스라엘 대사를 추방하고 군사협정 이행을 중단했다. 이스라엘 전투기는 적국기로 규정했다. 미국의 눈치를 보며 친(親)이스라엘 정책을 취하느니 아랍권의 반이스라엘 정서를 아울러 지역 맹주 자리를 굳히겠다는 전략이다.

이집트와 이스라엘 관계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에삼 샤라프 이집트 총리는 15일 터키TV에 출연해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 평화협정이 개정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무바라크 시절에는 이스라엘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미국의 지원을 받아 왔지만 더 이상은 이스라엘을 ‘공공의 적’으로 여기는 민심을 거스를 수 없다는 판단이다. NYT는 “이스라엘을 둘러싼 아랍권 문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감소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팔레스타인 국가지위 인정을 거부한다면 아랍권 전체가 강하게 반발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아랍권 시민혁명을 지지하면서 쌓아온 인기와 공들여온 대(對)아랍 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팔레스타인의 손을 들기도 어렵다. 친유대계 의원들은 미 의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다. 재정위기 등 국내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이들을 적으로 돌릴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외교 전문가 로버트 대닌은 “현재로서는 이 지역을 둘러싼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면서 “누가 무엇을 하기도, 하지 않기도 쉽지 않다”고 평했다.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