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습격 온난화 경종… 가로수 뒤덮고 안방까지 꾸물꾸물
입력 2011-09-18 18:36
유난히 잦은 비와 늦더위 등 이상기후 때문에 각종 병해충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약을 뿌려도 비가 많이 내려 방제 효과가 적었던 데다 기온이 떨어져야 할 때 늦더위가 찾아와 여름 해충이 다시 번식하게 된 것이다.
18일 서울 송정동 제방길에는 누렇게 변해 앙상하게 잎맥만 남은 가로수가 많았다. 흰불나방 애벌레가 나뭇잎을 다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송충이처럼 생긴 흰불나방 애벌레는 활엽수에 기생하며 온도가 높은 환경에서 잘 자란다. 보통 7∼8월에 증식하는데 올 여름엔 비가 많이 와서 확실히 방제가 안 됐고, 이달 늦더위가 오면서 다시 번식기를 맞았다.
이 벌레는 사람에게 피부병과 각막염을 유발시킨다. 송정동 주민 김미숙(70·여)씨는 “벤치에 앉아 있다가 발을 물렸다”며 “벌레 때문에 운동 나오기가 무섭다”고 말했다. 성수동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유재순(58·여)씨는 “20년 동안 여기서 장사를 했는데 올해 유독 심해서 구청에 몇 번이나 전화했다”면서 “가게 안에 들어온 벌레에 팔다리를 물리기도 했고 길에서도 벌레가 후드득 떨어져 행인들이 소리 지르기 일쑤”라고 했다. 성동구 관계자는 “예년엔 1∼2번 방제 작업을 했지만 올해는 4번 이상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여름내 폭우로 잠잠했던 모기도 늦더위와 함께 급증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달 첫 주 52개 채집망에 잡힌 모기는 495마리로, 지난달 한 주 평균(200여 마리)보다 2배 이상 많았다. 회기동 주민 이혜정(27·여)씨는 “야외에서 밥을 먹는데 모기가 하도 물어서 팔다리가 온통 상처투성이”라며 “구에서는 방역을 왜 안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했다.
서울 시내 대표적 가로수종인 버즘나무(플라타너스)는 지금쯤 잦아들어야 할 방패벌레가 왕성하게 번식하고 있어 잎이 누렇게 변하고 쪼글쪼글 말라가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관계자는 “버즘나무에 기생하는 방패벌레는 통상 7월 장마가 끝난 뒤 기승을 부리는데, 올해는 장마 후에도 자주 비가 내려 9월에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산 도봉산 청계산 등 주요 등산로의 참나무들은 ‘참나무시들음병’을 앓고 있다. 병원균(라펠리아균)을 가진 매개곤충(광릉긴나무좀)이 나무로 들어와 균을 감염시키면 수분과 양분의 통로가 막혀 나무가 시들어 죽는 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덥고 습한 날씨에 균이 활발하게 번식했다”면서 “피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이달에도 집중 방제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