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박희선] 인간에 대한 예의

입력 2011-09-18 17:55


지난 한가위 밑이었다. 고향 가는 차들로 고속도로 정체가 시작되고 있다는 뉴스를 들으며 퇴근하는 길, 지하철을 몇 정거장이나 지나쳐 있는 재래시장을 찾았다. 결실이 가난해도 마음만은 왠지 풍성해지는 한가위 기분 탓이었을까? 나는 집에 이미 먹을 것이 충분한 줄 알면서도 가족이 좋아하는 예쁘고 싱싱한 과일들을 두 팔이 뻐근하도록 사 들고 택시를 타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택시 뒷좌석에 오르며 기사 아저씨에게 인사를 건네는데, 고개를 홱 돌려 돌아오는 말에 가시가 단단히 돋쳐 있었다. “그거 물 안 새요? 시트에 뭐 묻히면 안 돼요.” 대답도 아니고 질문도 아니고, 무슨 말본새가 이런가! 도로에서 아줌마 운전자라면 무조건 반말부터 하며 달려드는 못된 남자를 보는 것처럼 마음이 확 상했다.

평소 같으면 ‘내 돈 주고 뭣 하러 불편한 차를 타나’ 싶어 대꾸도 않고 내렸을 텐데, 모처럼의 명절 기분이 남아 있던 터라 속없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저씨, 이거 다 과일 봉지예요. 천도복숭아 하나 드릴까요? 깨끗해서 손으로만 조금 닦아서 드셔도 돼요.” 복숭아를 건네받는 기사님 얼굴에 아차, 하는 표정이 스치며 고맙다는 인사가 돌아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집까지 가는 동안 기사 아저씨의 머쓱한 변명이랄까 괜한 넋두리를 내내 듣게 되었다. 그중에는 택시 기사의 직업적 고충으로 적잖이 이해되는 것도 있었지만 예의 ‘블랙박스 무용담’처럼 듣기 불편한 것도 있었다. 요컨대 요즘 택시는 백미러에 차 안팎을 비추는 블랙박스 카메라가 달려 있는데 이게 정작 교통사고보다 택시 기사와 승객들 간에 다툼이 생겨 시비를 가릴 때 더 유용하더라는 얘기다.

하지만 기사와 승객이 말다툼 끝에 경찰서까지 가서 끝판을 볼 일이 뭐 그리 있을까 싶어 공감이 가지 않았다. 더욱이 그 모든 이야기를 아저씨 입장에서 심정적으로 이해해 드린다 쳐도 그것이 방금 전 내게 행했던 무례에 대한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어떤 직업에나 어떤 인생에나 고충이 있고, 그것은 대부분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불거진다. 그래서 어떤 일을 오래 한 사람들은 직업적인 상대를 잘 다루는 것이야말로 프로페셔널이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믿고 전수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에 조심해야 할 함정이 있다. 잘 생각해 보자. 흔히 ‘사람을 다룬다’고 하는 말속에 타인을 이유 없이 내려 보고, 제압하고, 강아지처럼 고분고분하게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숨어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직업적으로는 그래도 된다는, 혹은 그게 더 유능한 것이라는 자기최면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아주 어릴 때 말을 배우면서부터 ‘인간에 대한 예의’를 익혔다. 그 아름다움을 저버리는 일에 부디 함부로 익숙해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박희선 생태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