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종석 (9) 장로 은퇴후 청천벽력 같은 ‘전립선암’ 판정

입력 2011-09-18 17:22


장로 은퇴 후, 나에겐 또다시 고난이 찾아왔다. 2년 전이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데 소변이 잘나오지 않았다. 밤중에 자다 말고 잠을 설치는 일도 다반사였다. 문득 ‘전립선에 무슨 문제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마침 우리 병원에 갓 들여온 특수의료장비 양전자단층촬영장치(PET)가 있었다. 당장 전립선암 진단 검사를 했다. 우려했던 대로 전립선특이항원(PSA) 수치가 굉장히 높게 나왔다. 며칠 후 다시 검사했지만 수치는 더 높게 나왔다.

방배동 대항병원에서 초음파, 직장 검사를 했다. 전립선 비대증이 있다는 진찰 결과가 나왔다. 그러면서 그 의사는 ‘PSA 수치가 계속 올라가는 만큼 종합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하는 게 낫겠다’고 조언했다. 후배가 의사로 있는 삼성병원 비뇨기과를 찾아갔다. 그 비뇨기과 앞에는 40∼50명의 환자들이 길게 줄지어 앉아 있었다. 나도 의사지만 환자의 고충을 알 것 같았다. 담당의사와 내가 얘기한 시간은 1분도 채 되지 않았다. 간호사가 옆에서 도와줬지만 얼마나 바쁘고 급한지 말을 걸기도 미안할 정도였다. 의사는 결국 ‘바쁘다’며 레지던트를 불렀다. 후배 의사의 행태에 분노가 일었지만 꾹 참았다. 나는 의사가 아닌 어쩔 수 없는 환자 신세였으니까.

그 레지던트는 다시 PSA검사를 했다. 수치는 더 올라가 있었다. 조직검사가 불가피했다. 하지만 어떤 목사가 조직검사를 하다가 출혈로 사망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었다. 나는 망설였다. 그리고 고심 끝에 당분간 조직검사를 미루기로 했다. 며칠 후 한 후배 장로가 자신도 전립선 수술을 했는데 담당의사가 백병원 비뇨기과 과장인 충현교회 안수집사라고 귀띔해줬다. 그 얘기를 들으니 용기가 생겼다. 그 안수집사를 찾아가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놨다.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하룻밤 주무시고 난 뒤 조직검사 해드리겠다. 그 결과를 보고 수술 여부를 결정하자’고 했다.

백병원에서 하룻밤 잔 뒤 조직검사를 했다. 전립선에서 12개 조직을 뗐다. 검사 결과 그중 3개 정도가 암이었다. 하지만 그 안수집사는 ‘비교적 초기이니 수술만 잘하면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약물요법도 있고 수술요법도 있지만 일단 수술하자고 했다. 그때 환자의 입장에서 내가 절실히 느낀 것은 의사와 환자 관계는 신뢰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환자들을 대하듯 하는 의사가 아니라 일대일 관계로서 환자를 대하는 의사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가 크리스마스 전이었다. 히스기야처럼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려 기도했다. ‘생명의 주권은 주님께 있으니 저의 삶과 죽음을 통해 주님만이 영광 받으소서.’ 신기하게도 두려운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암진단을 받고도 마음은 굉장히 덤덤해졌다. 성경을 읽었다. 마음속에 이런 질문이 들렸다. ‘내가 너를 히스기야처럼 15년을 더 살려주면 어떻게 할 것이냐?’

나는 유언장을 썼다. 마지막으로 가족들의 화해와 형제들의 우애를 당부했다. 그리고 5시간의 수술에 들어갔다. 수술은 잘 끝났다. 며칠이 지나 PSA를 쟀더니 제로(0)였다. 그 상태는 최근 검사에서도 변함이 없다. 항암제 역시 먹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내 육체적 능력에 한계가 와서 그 전보다 내가 진료하는 환자 숫자는 절반으로 줄었다.

정리=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