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美 생존 해병에 첫 명예훈장 수여… 36명 구한 영웅 “난 영웅 아니다”

입력 2011-09-16 17:53

‘명예의 훈장(Medal of honor)’은 미국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이다. 까다로운 선정 기준으로 사망 뒤 수여되는 경우가 많다. 15일(현지시간) 살아있는 해병에게 처음으로 이 훈장이 수여됐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주인공은 23세 다코타 마이어 예비역 병장이다. 그는 2년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적진에 뛰어들어 동료 등 36명을 구했다.

2009년 9월 8일 새벽 당시 상병이던 마이어는 아프간 쿠나르 지역 간지갈 계곡에서 근무 중이었다. 갑자기 전기가 끊기고 어두워지더니 총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역 원로들을 만나기 위해 마을로 들어간 부대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탈레반의 덫에 걸린 것이었다. 부대에는 아프간 군과 경찰뿐 아니라 미 해병대원들도 있었다.

무전을 통해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립됐으므로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마이어는 상관에게 그들을 구하러 가게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자리를 지키라는 답변만 들었다. 상관은 구출작전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마이어는 상관의 지시를 어겼다. 멕시코 출신 동료와 함께 장갑차(험비)를 타고 적진으로 돌격했다.

그는 6시간 동안 싸웠다. 5차례 적진을 오가면서 탈레반을 적어도 8명 사살했다. 부상당한 아군 등 36명을 고립지역에서 빼내왔다. 숨진 미군 시신 4구도 수습했다.

미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훈장 수여식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마이어의 목에 직접 푸른 리본이 달린 명예의 훈장을 걸어줬다. 오바마는 그에게 “살아오지 못한 동료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신의 최고지휘관으로서 모든 미국인을 대표해 그대는 주어진 임무를 그 이상으로 완수했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마이어는 수여식이 진행되는 동안 감정을 조금도 표출하지 않았다. 수여식에 앞서 가진 인터뷰에서 “나는 영웅이 아니다”라고 했다. 식이 끝난 뒤 트위터에 “그동안 애써준 모든 분에게 감사한다. 항상 충실하겠다(Semper Fi·미 해병대 표어)”고 짤막한 글을 남겼다.

오바마는 수여식에서 미소를 지으며 마이어가 얼마나 성실한 사람인지 설명했다. 훈장 수여 결정을 직접 알리기 위해 백악관 비서진이 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마이어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중이니 다시 전화해 달라”고 했다. 오바마는 마이어의 점심시간 중 통화해야 했다.

일정 조율 과정에서 마이어는 대통령과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했다. 행사 전날인 14일 저녁 두 사람은 백악관 안뜰에서 맥주 한 잔을 함께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