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민원발급기 10대중 9대, 심야·휴일엔 ‘무용지물’
입력 2011-09-15 21:52
“인구 270만명이 넘는 인천에 24시간 운영하는 무인 민원발급기가 한대도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돌아가신 부친이 살던 집을 팔기 위해 지난 추석연휴 동안 인천을 찾았던 김모(52·서울 개포동)씨는 가동 중인 무인 민원발급기를 찾으러 시내를 몇 시간 헤매다 결국 분통을 터트렸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여섯 달 넘게 집이 팔리지 않아 고심하던 김씨는 집을 보러 온다는 소식에 지난 13일 부리나케 인천으로 달려갔다. 하루라도 빨리 집을 팔 욕심에 김씨는 시세보다 1000만원을 깎아줬고, 계약 체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될 줄 알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서류가 발목을 잡았다. 구매자가 세금체납 여부를 확인하자며 건축물대장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증빙서류를 떼기 위해 집 근처 동 주민센터를 찾았으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인근 동 주민센터도 마찬가지였다. 하는 수 없이 김씨는 이튿날 서류를 준비해 구매자에게 전화했으나 이미 다른 집을 구했다는 답변을 들었다.
전자정부 구현을 위해 정부가 도입한 무인 민원발급기가 평일 심야시간대와 휴일에는 대부분 무용지물인 것으로 조사됐다.
무인 민원발급기는 시민들이 시·군·구청을 방문하지 않고도 ‘24시간 365일’ 주민등록등본 등 43종의 제 증명을 발급받을 수 있도록 2001년 시범사업을 거쳐 이듬해부터 전국 지자체로 확대 보급됐다.
지난 6월 현재 행정안전부에 등록된 전국 무인 민원발급기 2209대 설치 장소와 운영 시간을 국민일보가 15일 조사한 결과 전체의 92.4%인 2040대가 휴일은 물론 평일 심야시간대에 이용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24시간 연중 서비스를 제공하는 무인 민원발급기는 전체의 7.6%인 169대에 그쳤다. 34.7%인 764대는 평일 오후 6∼7시까지만 가동했고, 나머지는 자정을 전후로 작동을 멈췄다.
게다가 무인 민원발급기 10대 중 6대는 지하철역과 쇼핑센터 등 사람의 왕래가 많은 다중이용시설이 아닌 읍·면·동 주민센터에 설치돼 있었다. 이곳에 설치된 무인 민원발급기는 업무시간이 끝나면 이용 자체가 불가능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무인 민원발급기의 지문인식 센서가 오작동하거나 내장된 프린터의 용지걸림, 장애 발생으로 평소 항의가 많은 데다 심야시간에는 별도 직원을 두고 관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 주민센터를 통폐합해 주민들을 위한 문화시설로 바꾸고, 이에 따른 행정서비스 공백은 무인 민원발급기로 대체한다는 정부의 호언이 무색했다.
공공기관 내 설치 비중이 가장 높은 지자체는 충남(83.3%) 제주(83.3%) 강원(83.2%) 전남(79.1%) 등의 순이다. 다중이용시설 내 설치 비중이 높은 지자체는 부산 광주 대전 울산 등 4곳에 불과했다.
이처럼 무인 민원발급기가 ‘반쪽’ 운영되면서 제 증명 발급 실적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난해 말 현재 무인 민원발급기는 2191대로 전년보다 166대 증가했다. 하지만 제 증명 발급건수는 1054만건에서 1096만건으로 고작 4.0%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전체 민원 발급건수 5억2915만건 가운데 무인 민원발급기를 통한 발급 비율은 2%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인터넷을 통한 전자민원 서비스 이용 실적은 2억68만건에서 2억6245만건으로 30.8% 늘어난 것과 대조된다.
황일송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