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빈곤의 세계화
입력 2011-09-15 18:47
기술의 발전으로 빈곤의 극복이 가능하다고 여겼던 때가 있었다. 1950년대부터 70년대 중반까지인 자본주의 황금기(Golden Age). 미국과 유럽 각국은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뤄냈다. 노동인력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우리나라가 광부와 간호사를 독일에 파견한 것도 이 즈음이다.
그러나 70년대 중반 고도성장이 갑자기 멈췄다. 곳곳에 신자유주의 정권이 들어섰고, 사회복지가 축소됐다. 저소득층이 직격탄을 맞았다.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워킹 푸어(working poor:일하는 빈곤층)를 비롯한 새로운 빈곤층도 늘어나는 추세다. 더욱이 빈곤층은 교육이나 문화 인간관계 등에서 배척당하기 일쑤여서 언제든지 사회갈등 요소로 등장할 소지가 있다. 각국 정부 또는 유엔이 빈곤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이유다.
“가난은 폭력의 한 형태입니다.” 1987년부터 1999년까지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지낸 페데리코 마요르 사라고사의 말이다. 그는 길거리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폭력의 산물이 아니면 무엇이겠으며, 집도 없이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폭력의 산물이 아니면 무엇이겠느냐고 반문한다. 이어 극심한 빈부격차로 인해 어쩌면 또 한 번의 세계대전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면서 ‘나눔’을 강조했다.
어제와 그제 두 가지 해외뉴스가 눈길을 끈다. 하나는 강대국인 미국에 무려 4620만명이 빈곤층이라는 소식이다. 6명당 1명이 빈곤층인 셈이다. 더 큰 문제는 빈곤층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으며,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상위에 올라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새삼 심각한 상황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다른 하나는 케냐의 송유관 폭발 사고다. 나이로비의 시나이 빈민촌을 지나는 송유관에서 새 나온 석유를 퍼 담으려 주민들이 몰려들었을 때 폭발음과 함께 큰 불이 나 120명 이상이 숨졌다. “아이들이 장작처럼 탔고, 아기를 등에 업고 타 죽은 여성도 있었다”는 게 목격자들 전언이다. 이들이 가난하지 않았다면 대형 참사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빈곤의 세계화’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다. 그래서 “시간을 미룰수록 가난을 퇴치하는 데 드는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는 마요르 전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지적도 흘려들을 수 없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