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아니니까’… 공공기관 주유비 펑펑
입력 2011-09-15 22:46
“회사 차 기름값은 내 돈 아닌 남 일.”
공공기관 10곳 중 6곳 이상이 ‘주유 대리인’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 기름값을 회사(기관) 비용으로 대는 법인 차량이다 보니 운전자들이 비싼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며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15일 공공기관 109곳(공기업 27곳, 준정부기관 82곳)을 대상으로 보유 차량수와 주유비용, 주유방식 등을 조사한 결과다. 재정부에 따르면 철도공사와 농어촌공사, 환경공단 등 69개 공공기관(63.3%)은 모두 운전자가 임의로 주유소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이들 69개 기관이 보유한 차량은 지난해 7월 말 기준 모두 4500대로, 연간 주유비용은 127억원 수준이다.
법인차량의 경우 주유비용은 운전자가 아닌 해당 법인이 지불하기 때문에 운전자가 기름값에 대한 부담이나 책임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별도 관리가 없으면 도덕적 해이 현상, 즉 ‘주유 대리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국전력은 지난 1월부터 법인 차량 운전자들이 회사가 지정해 놓은 주유소에서만 주유를 하는 관리방식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기름값 결제는 지정된 법인 카드로 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지정 주유소에서 제대로 주유하고 있는지 실적 관리가 이뤄진다.
한전은 매주 유가정보사이트인 오피넷에서 본사 인근 3㎞ 이내 최저가 업체 3곳을 찾아 지정 주유소로 선정한다. 별도로 본사 인근의 주유소 1곳과는 ℓ당 ‘공장도 가격+70원’ 수준으로 할인 받기로 협약도 맺었다. 이렇게 선정된 주유소는 매주 운전자들에게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로 전달된다. 서장문 한전 장비관리팀 운영 차장은 “예전에는 주유비를 월별로 사후 집계해 지급하는 방식이었는데 법인카드를 사용하니 관리가 용이해졌다”면서 “저렴한 주유소를 이용하기 때문에 비용이 절감될 뿐 아니라, 운전자들도 주유소를 찾아다니는 시간·노력이 줄어 좋다는 평가를 한다”고 말했다.
재정부는 한전을 비롯해 석탄공사와 전기안전공사 등 7개 기관이 최저가 주유소를 선정해 이용하면서 주유 대리인 문제 발생 가능성을 줄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도로공사와 석유관리원 등 33개 기관은 경쟁입찰 방식 등으로 특정 주유소를 지정해 주유비용을 아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재정부 관계자는 “우수 사례는 내년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집행지침에 반영해 전 공공기관으로 확산시킬 것”이라면서 “반면 주유대리인 문제 발생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 기관들에 대해서는 주유비 절감을 위한 개선 방안 마련 여부 및 실행 노력을 경영실적평가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