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의 수다] 한국, 칭찬만 해라?
입력 2011-09-15 18:08
“아니, 그건 잘못 됐잖아요!”
이태원 지하철역에서 서울시 대중교통 만족도에 대한 설문지를 돌리던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화를 낸다. 이태원이나 인사동에 나가면 십중팔구 여론조사에 응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대학 다닐 때 여론조사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 그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나는 매번 설문지를 받아든다. 하지만 그때마다 조사 방식에 대한 의아함을 떨칠 수 없다.
그 여론조사원이 화를 낸 것은 내가 조사 문항에 제대로 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모든 문항에 최고 점수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서울시 지하철의 청결과 효율성은 좋게 평가했지만 구간에 따라 너무 긴 배차간격과 승객 태도에는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나의 그런 시큰둥한 평가가 그 여론조사원의 눈에는 너무 부정적으로 보였거나 설문이 의도한 결과와 많이 다르다고 생각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결과가 이미 정해진 여론조사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는 게 여론조사 본연의 목적이 아닌가?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한국사회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소신껏 평가하게 놔두기만 한다면 말이다.
내 생각에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자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특히 외국인들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도할 때는 그런 성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그런 보도들이 모두 맞는다면 모든 외국인은 한류 팬이고, 한국을 모국보다 훨씬 좋아해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조차 안 한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신문에서는 외국인의 의견을 완전히 다른 말로 번역하기 일쑤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는 생방송이 아니기 때문에 의견이 편집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경우에도 그런 적이 많았다. 녹화할 때는 분명히 장단점을 골고루 말했는데, 장점을 말한 부분만 뚝 잘라서 방송에 내보내는 것이다.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 비판적 평가를 하지 않는 것은 ‘머릿속의 가위’, 즉 자기검열 때문이기도 하다. 체류 중인 나라에 대해 나쁜 말을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혹은 한국 언론의 부정적 반응을 염려해서 빤한 칭찬을 하거나 진심을 숨긴다.
가끔 보면 한국에 대해 좋은 말만 들으려 하고, 부정적인 의견을 말하면 외국인이라 몰라서 그렇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런지 이해가 안 된다. 나는 독일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칭찬일색의 의견을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만약 독일에 대해 칭찬만 늘어놓는 사람이 있다면 나를 놀리려고 그러는 것이거나 독일이라는 나라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회 발전을 생각하면 예의상 하는 칭찬보다는 비판적 의견이 더 필요하다. 비판은 문제를 지적하고, 지적된 문제는 고쳐지거나 나아질 수 있다. 하지만 친절한 거짓말은 달콤쌉싸름한 당의(糖衣)로 문제를 감싸 드러나지 않게 한다. 비판은 수용하기만 한다면 좋은 약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베라 호흘라이터(tbs eFM 뉴스캐스터)·번역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