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승리인가 광포한 학살인가… 십자군 전쟁을 보는 두 가지 시선

입력 2011-09-15 21:12


시오노 나나미가 돌아왔다. 15년 동안 매년 한 권씩 총 15권의 ‘로마인 이야기’를 선보였던 그녀가 이번에 들고 온 것은 ‘십자군 이야기’다.

국내에서만 330만부가 팔린 ‘로마인 이야기’의 유명세 때문에 ‘십자군 이야기’는 출간 전부터 화제였다. 그녀의 작품 전부를 번역 출판한 한길사를 제쳐두고 판권을 공개 입찰했으니 이목이 더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출판가에서는 선인세가 최대 관심거리였다. 정확한 액수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시오노 나나미의 새 파트너 문학동네는 10억원 상당이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 근접한 선인세를 지불했다는 소문이다.

때마침 2003년 첫 권이 나온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가 3권을 출간하며 개정판을 선보였다. 십자군 전쟁이라는 동일한 소재를 다룬 두 권의 책을 번갈아 읽으며 드는 질문 하나. 만화로 보는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면 충분하지,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까지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김태권이 책을 쓴 목적은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그가 십자군이라는 소재를 선택한 직접적 원인은 부시 행정부가 그릇된 명분을 내걸고 시작한 2003년 이라크전 때문인 듯하다. 9·11테러와 잇따른 대테러전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권의 충돌론이 급부상하던 때였다. 책은 서구의 이슬람 혐오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작심하고 풀어낸다. 로마제국의 흥망과 중세 유럽의 문명, 7세기 이전 중동지역의 역사 등 배경지식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해 만화로 읽는 교양서답다. 만화적 농담이 뜬금없을 때도 있지만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해묵은 반목관계를 이해하기에는 적당하다.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는 독자에게는 우연, 혹은 뜬금없는 선택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물론 시오노 나나미에게는 필연적 귀결점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로마부터 르네상스까지의 역사를 집필하는 데 평생을 바치고 있다. 처음 이탈리아 르네상스시기를 살았던 체사레 보르자, 마키아벨리 등의 인물에 매료되었던 그녀는 서서히 시대를 거슬러 오른다. 로마, 베네치아 공화국, 비잔틴 제국 등 천년제국의 운명으로 관심이 이동한다. 그녀의 입장에서 보자면 로마 이후 르네상스 이전 시대에 남은 건 한 가지, 십자군 전쟁뿐이다. 십자군 전쟁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전혀 다른 이유로 선택된 십자군이라는 동일한 소재는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한국 독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두 권의 책 모두 십자군 전쟁의 본질이 종교전쟁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의 산물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시오노 나나미 말처럼 전쟁은 “인간이 여러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할 때 떠올리는 아이디어”였다. 십자군 전쟁을 발의한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의도부터가 그랬다. 목적은 신성로마제국의 강대한 힘으로부터 교황의 권위 지키기였다. 마침 비잔틴 제국이 이슬람세력에 맞서기 위해 파병 요청을 하자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명분은 이슬람교도를 상대로 한 성전(聖戰)이다.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는 말에 제후, 기사, 농민, 상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원정길에 나섰다. 하지만 저마다 꿍꿍이가 달랐다. 영주들은 새로운 영토 확장에 관심을 두었고 기사들은 전리품이 탐났고 상인들은 지중해 교역을 독차지하려 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여기까지 뿐이다. 역사 인식은 차이가 뚜렷하다. 김태권은 서구의 이슬람 성전에 덧씌워진 오해를 푸는 데 주력한다. 특히 십자군의 야만스러움을 부각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안티오키아 공방 때 보에몽 공작이 이슬람의 인육을 먹었다든가, 주민 전원의 안전을 약속해놓고 철저하게 파괴해 버린 마아라트 알누만의 생지옥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반면 시오노 나나미는 십자군의 광기와 만행에 대해 시종일관 짧고 간결한 설명으로 일관한다. 그녀에게는 미아라트 알누만의 참사보다 이에 관한 이슬람 측 기록이 부정확하고 과장되어 있다는 점이 더 거슬리는 듯 보인다. 김태권에게 1차 십자군 전쟁의 주역인 보에몽 공작은 괴물이지만, 시오노 나나미에게는 책략가이자 냉정한 전술가다. 1차 십자군 전쟁에서 이슬람이 패배한 이유도 이슬람 측의 주장대로 내분 때문이 아니다. 그녀가 보기에 집안싸움은 십자군 또한 심했다. 승리의 원인이 있다면 성지탈환이라는 궁극의 목표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

시오노 나나미는 기독교 혹은 이슬람교, 어느 쪽의 입장을 옹호하거나 변호하려 하지 않는다, 오로지 누가 전쟁에서 이겼는가, 전쟁에 참여한 이들이 어떻게 자신의 운명과 맞닥뜨렸는가가 중요할 뿐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이런 입장은 그녀가 ‘나의 친구’라고 말한 마키아벨리의 현실인식 태도에서 빚지고 있다. 그녀에게 어떤 것이 더 선하고 어떤 것이 더 악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목적을 위해 어떤 방법이 최선인지를 따질 뿐이다.

당연히 시오노 나나미에 대한 독자 반응은 극과 극이다. 재미난 것은, 욕하면서도 막장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처럼 독자들은 비판하면서도 그녀의 책을 읽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전매특허인 제국주의, 영웅주의적 역사관, 주관적인 역사해석은 비난의 이유이자 인기의 비결이다. 그녀는 언제나 도덕주의자가 아니라 냉정한 승자의 편이다. 독자 역시 그녀가 찾아낸 승자의 논리에 매혹된다. 신자유주의가 풍미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부터 출간된 ‘로마인 이야기’가 국내에서 사랑받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역사적 상상력이 넘치는 시대지만 아직 다른 민족이나 세계의 역사를 시오노 나나미처럼 소화해줄 만한 저자가 우리에게 없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그녀의 인기 비결 중 하나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는 이제 1권이 출간되었다. 이슬람의 영웅인 살라딘과 그녀의 전공분야인 베네치아 상인들이 등장할 2,3권이 남아 있으니 앞으로 어떤 재미를 선사할지 궁금하다. 하지만 ‘로마인 이야기’를 읽었던 사람들에게 ‘십자군 이야기’는 아쉬운 책이다. 천년, 이천년 전 인물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해 살아 움직이게 하고 독특한 인물평으로 역사를 오락처럼 즐기게 했던 솜씨야 남아있지만 많이 무뎌졌다. 수많은 자료를 섭렵한 후 역사를 소설처럼 풀어내던 전작들에 비한다면 ‘십자군 이야기’는 사료 더미에 가깝다.

결론을 말하자면 서구시각에서 벗어나 간략하게 십자군의 역사를 살피고 싶다면 김태권의 책을 읽는 편이 좋겠다. 만약 전쟁이라는 측면에 방점을 찍고 승자와 패자의 파노라마를 즐기고 싶다면 역시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권한다. 물론 가장 좋은 건 두 권의 책을 더불어 읽는 것이다. 상호 보완적인 관점에서 십자군 전쟁을 바라볼 수 있다.

한미화 출판평론가

십자군 이야기1/시오노 나나미/문학동네

‘로마인 이야기’의 베스트셀러 저술가 시오노 나나미(74)가 지난해부터 작업하고 있는 십자군 3부작 중 1권. 저자는 일본 대학을 졸업한 뒤 이탈리아에서 잠시 공부했고 1968년부터 40여 년간 이탈리아에 머물며 저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레몽 등 서유럽 출신 기사 6명을 메인 캐릭터로 진행되는 진격, 포위, 승전, 패전의 전쟁사. ‘로마인 이야기’식 서술을 그대로 차용해 전략, 전술 분석에 묘사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1~3/비아북

비판적 시선의 지식만화를 생산해온 만화가 김태권(37)이 9년째 매달리고 있는 역사만화. 단행본 6권 중 3권까지 출간됐다. 현재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연재하고 있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과감한 해석, 폭력으로 비화된 종교적 광기에 대한 비판이 특징. 십자군 전쟁이 소재지만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유럽사 전반을 종횡무진 누빈다. 21세기 초 미국의 대테러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십자군 전쟁의 비교대상으로 자주 인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