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시대’ 한국사회의 두 얼굴… 이야기가 살아있는 시민사회 VS 이야기를 저해하는 심의정책

입력 2011-09-15 18:55


대한민국 직장인이 회사에서 실력 말고 꼼수로 살아남는 법은 두 가지다. 혼이 담긴 연기로 잔뜩 ‘쫄아’ 있는 척하거나 언어의 연금술사가 돼 아부하기. 권위적인 조직일수록 이런 꼼수가 더 잘 통한다. 초급 과정은 적당히 쫀 척하는 건데, 점차 고급 과정인 ‘아부 권법’으로 발전한다.

이런 권법이 자주 사용되는 곳은 회식 장소다. 회식 자리가 길어질수록 목격되는 부류는 구석에서 술에 취한 채 잠을 자는 직장인과, 술의 힘을 빌려 붉은 립스틱보다 진한 아부를 하는 직장인이다. 한 번도 이런 권법을 사용해 본 적 없다는 듯 이를 조롱하는 건 아니다. 이 또한 치열한 밥벌이의 현장이니까.

문제는 재미가 없다는 거다. 상사는 권위를 실추하지 않기 위해, 부하 직원은 직장생활의 안위를 위해 끊임없이 연기하는 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팍 시든 배추마냥 후줄근하고, 자동화 생산 라인에서 1초마다 찍어 내는 플라스틱 물건마냥 엇비슷하다. 회사 생활이 재미없는 건 노래방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김 대리’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너와 나의 초라한 삶의 이야기일지라도 솔직하게 털어놓을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하며 자기 검열을 거친 대화를 나누는 때가 많다.

번지르르한 말은 나돌지만 진솔한 이야기는 죽어버린 회식자리처럼 이야기가 제한된 사회는 활력을 잃는다. 수많은 사회학자가 민주주의를 갖가지 개념으로 설명하지만 ‘이야기가 살아 있는 사회’와 ‘이야기가 죽어버린 사회’를 민주와 비민주로 설명할 수도 있지 않을까.

SNS 르네상스 시대

역사는 다양한 이야기가 빠르게 확산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계급과 차별, 검열이 철폐되면서 이야기 구조가 다양해졌고, 인쇄술과 통신의 발달로 이야기 확산은 빨라졌다.

이런 면에서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 시대를 사는 2011년 대한민국 시민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활력이 넘친다. SNS는 이야기를 전파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같은 사안을 놓고 공담(公談)하는 사람들끼리 언제든 연대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 엄격한 조직의 속박이 아니라, 느슨한 공동체를 끊임없이 만들었다 해체하는 형식의 연대를 이어가는 것이다. 군사 정권 시절 대학생들이 벌인 ‘최루탄 정치’가 비장한 함성이라면 ‘SNS 정치’는 훨씬 경쾌한 속삭임이자 기득권을 조롱하는 ‘블랙 유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지난달 15일 서울 명동 등 전국 8개 지역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아름다운 독도!”를 외치고 노래를 부른 뒤 뿔뿔이 흩어졌다. 한복, 태권도복 등 갖가지 복장을 한 사람들은 서로 일면식조차 없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규탄하는 사람들이 SNS에서 모의한 ‘독도 플래시몹’을 서울 명동에서 벌인 것이다.

인터넷상에서 불특정 다수가 정해진 시간·장소에서 만나 이벤트를 벌이기로 약속한 뒤 오프라인에서 결집하는 플래시몹, 그리고 시민들이 지식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프레젠테이션 모임(TED)’ 열풍도 새로운 결속 풍토다.

정치적 공담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데도 익숙하다. 제일 잘 나오는 각도로 ‘셀카’를 찍고 틈틈이 일상을 SNS에 기록한다. 젊은 세대일수록 “내가 제일 잘 나가”(아이돌 그룹 2NE1이 지난 6월 24일 발표한 노래로 발매 당일 실시간 음원 차트 1위를 휩쓸었다)라며 자신의 장점을 자랑한다. 매력을 표현하는 유행어인 ‘시크하다’ ‘쿨하다’는 솔직하면서 당당한 게 대세임을 보여준다. 때로 착함, 겸손이란 가치는 조직에서 말을 아끼고 적을 만들지 않는 처세술의 이면으로 기능한다는 걸 사람들은 알고 있다.

일순간 유력 대선 후보로 떠오른 ‘안철수 현상’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나는 공적 개념을 가진 CEO여서 사회 공헌을 생각하며 수익성 있게 경영해 왔다. 정치만 한 분, 변호사 하다가 시정(市政)하는 분에 비하면 실력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다.”

지난 5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한 말이다. 안 원장은 서울 시장 출마설이 불거진 후에도 전국 각지에서 열린 ‘청춘 콘서트’에서 다리를 꼰 채 좌담회를 진행했다. 그런 안 원장을 향해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안 원장이) 겸손부터 배워야 한다. 겸손은 고귀함보다 더 고귀하다”고 못마땅해했다.

안 원장은 안정된 의사의 길 대신 컴퓨터 바이러스 전문가가 돼 무료 백신을 공급한 인생 이력과 가치관 때문에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다. 자기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서도 기존 정치인들과는 다르다. 유권자 앞에서 허리를 깊이 숙이고 억지웃음만 흘리거나, 평소에는 최대한 노출을 꺼리는 신비주의 전략으로 임하는 게 아니라 당당히 소신을 밝히는 쪽에 가깝다. 때로 “겸손하지 않다”고 평가받는 안 원장의 행동이 젊은 세대에겐 자신감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2011년은 자의식의 강화, 활발한 연대, 이야기의 확산으로 요약될 수 있다. 16세기 서구사회를 휩쓸었던 르네상스 현상과 일맥상통한다. 2011년은 ‘SNS 르네상스 시대’다.

시민사회의 ‘열린 감시’

그러나 이야기를 확산시키는 SNS 시대가 자유를 전적으로 확장시키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사적인 영역에서 감시되고 시정돼야 할 수준의 문제가 공적 영역으로까지 확대돼 필요 이상 ‘사건’을 만든다. 대학교나 지하철에서 안하무인으로 행동한 개인이 다음날이면 우유녀, 개똥녀 등 각종 ‘○○녀’가 돼 포털 사이트 검색 1순위가 되는 것이 ‘과잉 감시’의 예다. 타깃이 된 ○○녀는 적나라한 신상 노출로 오랫동안 신음한다. 다수가 다수를 감시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반면 ‘열린 감시’의 효과도 증가한다. 이제껏 공권력이 주목하지 않았지만 감시의 필요성이 새롭게 제기된 영역이 다각도로 여론의 시선에 포위되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잇따라 포털 사이트 상위 검색 순위를 차지하는 동물 학대 사건이 그 예다. 지난달 광화문 공사 현장에서 건설 노동자가 40분간 돌을 던져 중태에 빠뜨린 ‘광화문 강아지’ 사건 등에서 네티즌들이 제보하고 고발하는 과정은 우리 사회가 보호의 대상을 동물로 확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강아지를 반려 동물로 여기며 자란 젊은 세대의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다.

시민들은 저인망식으로 일상 곳곳에서 감시의 눈을 뜨고 공권력과 대치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시위 현장에서 종종 목격된다. 경찰은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를 채증하려 카메라를 들고, 시위대는 전경과 용역의 강제 진압에 맞서 카메라를 든다. 카메라 대 카메라의 싸움이다. “다 찍고 있어!” “때리면 트위터에 올려 버린다!” 이렇게 외치며 총 대신 카메라를 겨누는 시민과 경찰은 서로 어쩌지 못하고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한다.

“공권력이 죽었다.” 이런 현장이 목격된 다음날이면 언론들은 ‘공권력의 죽음’을 기사 제목으로 뽑곤 한다. 하지만 공권력 또한 언제 어느 때든 견제의 대상이 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적어도 누구나 눈을 치켜뜨고 문제 현장을 곧바로 인터넷에 올리는 사회에서는 공권력이라고 해도 야만적인 폭력을 행사하기는 쉽지 않다.

시대착오

다수가 다수를 감시하는 사회일수록 국가의 감시와 검열은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와 행보를 같이해야 한다. SNS를 바탕으로 감시의 주축이 된 시민들은 국가의 감시가 명분이 있는지를 놓고 끊임없이 고민한다. 국가가 시대와 동떨어진 감시를 벌이면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대항할 준비가 돼 있다. 지난달 발생한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음반 심의 논란이 그 예다.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최근 노래 가사에 술이 포함됐다는 이유로 보컬그룹 10cm의 ‘아메리카노’, 바이브의 ‘술이야’ 등을 잇따라 청소년 유해 매체물(19금)로 지정해 논란이 됐다. 술 또는 담배가 들어간 노래 가사마다 기계적으로 19금 지정을 한 것이다.

네티즌들은 바나나, 당근도 모조리 19금 판정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꼬며 연일 여성부 홈페이지에 항의 글을 올렸다. 대다수 언론과 문화계 종사자들도 군사 정권 시절의 문화 검열과 비슷하다는 기사를 쏟아내 이에 가세했다. 가수 옥주현은 트위터에 “비슷한 이유로 배꼽 보이는 옷, 갈색 머리가 금지됐던 12년 전보다 요즘이 더 엄하다고 들었다. 이 모든 게 문화의 올바른 발전을 위한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법원도 청소년보호위원회의 19금 지정이 부당하다는 결론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부장판사 안철상)는 지난달 25일 SM엔터테인먼트가 여성가족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프로젝트 그룹 ‘SM 더 발라드’가 발표한 ‘내일은’ 노래 가사에 포함된 ‘술에 취해 널 그리지 않게’ ‘술에 취해 잠들면 꿈을 꾸죠’ 등은 연인과 헤어진 괴로운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관용적 표현일 뿐 술을 권장하는 표현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논란이 거세지자 지난달 27일 청소년보호위원회 강인중 음반심의위원장이 자진 사퇴했다. 여성부는 장기적으로 음반 심의를 민간에 이양하기 위해 청소년보호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논란이 음반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방송과 통신 분야에 대한 심의도 매년 강화되고 있어 정치적인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저해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통신 분야 심의 시정 요구 비율은 2008년 50.7%에서 72.4%(2009년), 89.8%(2010년)로 증가했다. 지난해 10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사실상 검열기구로 기능할 위험이 있으니 심의를 민간 자율 기구에 이양하라”고 방통위에 권고했다.

심의 유형으로는 사행심 조장이나 음란성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잣대가 모호한 ‘사회 질서 위반’도 2008년 29.4%, 2009년 27.6%를 차지했다. 지상파 방송 분야 제재, 권고 건수도 142(2008년), 152(2009년), 164(2010년)로 매년 증가했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법에 따른 심의를 한다고 하지만 심의 위원 개개인에 따라 해석될 여지가 많다. 이런 식의 심의는 표현의 자유와 창의성을 억압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2011년 대한민국은 이야기가 살아 있는 시민사회와 이야기를 저해하는 심의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아부와 쫀 척하는 꼼수만이 통하는 권위적인 회식자리처럼 이야기가 제한된 사회는 재미가 없다.

“존재한다는 것은 교류한다는 뜻이다.” 러시아 인문학의 거장 미하일 바흐친(1895∼1975)이 한 말이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