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가장 길었던 하루
입력 2011-09-14 17:45
하루는 24시간이라지만 그 길이는 날마다 다르다. 1년 같은 하루가 있는가 하면 눈 깜짝할 새 지나가는 하루도 있다. 객관적 시간과 주관적 시간의 차이. 그렇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긴 하루는 언제였을까?
1944년 6월 6일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첫째 날. 적어도 미국의 작가 코넬리어스 라이언에 따르면 그렇다.
라이언은 3년에 걸쳐 작전에 참여했던 연합군과 방어에 나섰던 독일군, 관련 민간인 생존자들을 추적해 700명이 넘는 인터뷰 결과와 양측 군대의 보고서, 개인의 전쟁일지, 공식 문서 등을 망라해 1959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기록한 논픽션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 책에 ‘가장 긴 날(The Longest Day)’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프랑스 해안방어를 책임지고 있던 독일의 명장 에르빈 롬멜을 인용해서.
롬멜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노르망디) 침공의 첫 24시간은 결정적인 날이 될 것이다…독일의 운명이 거기 달려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 24시간은 독일은 물론 연합국에도 가장 긴 날이 될 것이다.”
모두 18개 언어로 번역돼 수천만부가 팔린 이 책은 1962년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돼 더 유명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영화에 우리식 제목을 따로 붙였다. ‘지상 최대의 작전’. 실제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유럽전선의 승패를 가르는, 그래서 인류사의 방향을 전체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바꾼 분수령으로 평가받는 만큼 꽤나 어울리는 제목이다.
이처럼 전쟁의 향배를 단숨에 가른 상륙작전은 또 있다. 전쟁사적 측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한민국사에서도 대단히 높이 평가되는 인천상륙작전.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많은’ 전쟁사가(史家)를 인용해 인천상륙작전을 ‘역사상 가장 빛나는 상륙작전의 하나’요 ‘전술적 최상품’이라고 극찬한다. 사실 얕은 수심과 조수 간만의 극심한 차 같은 불리한 자연조건과 지원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유엔군 내부에서도 반대가 많았던 이 작전의 성공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북한의 기습 남침 이래 밀리기만 하던 초기의 수세에서 벗어나 전쟁의 양상을 일거에 뒤집을 수 있었다.
또 만약 이 작전이 성공하지 못했더라면 오늘날 한반도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을 수 있다는 데 비추어 작전이 개시된 1950년 9월 15일은 대한민국에 관한 한 나라의 운명이 걸려있던 ‘가장 길었던 날’일지도 모른다. 인천상륙작전 61주년인 오늘, 너무도 무심한 듯한 국민의 모습이 안타깝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