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영석] 로이스터의 매직, No Fear

입력 2011-09-14 17:43


한국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가 올해 독식한 분야가 있다. 롯데의 중심타자들인 홍성흔 이대호 강민호가 병살타 1∼3위를 기록하고 있다. 병살타 순위 20위까지 주전 6명이 포함돼 있다. 팀 병살타도 한 경기에 거의 한 개꼴로 부동의 1위다. 홍성흔은 7경기 연속 병살타 신기록으로 역대 병살타 1위에 등극했다.

그럼에도 롯데는 잘나가고 있다. 치열한 2위 경쟁 속에 어느덧 프로야구 대권까지 노리고 있다. 올해 초와는 상전벽해다. 롯데는 4월 21일 4승2무10패로 꼴찌였다. 6월 29일엔 28승3무36패로 승패 차이가 무려 ‘-8’이었다. 그런 롯데가 올스타전 이후 승률 7할을 넘기며 무섭게 치고 올라가더니 이젠 안정적인 ‘+10’ 권역에 안착했다. ‘가을야구’는 물론이고, 1위 삼성까지 위협하고 있다. 길게 던져주는 선발투수, 안정된 불펜, 불방망이 타선의 조화가 만들어낸 결과다. 물론 양승호 감독의 뛰어난 소통력도 한몫했다.

사실 2000년대 롯데는 ‘꼴찌왕’이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의 정규리그 성적은 ‘8-8-8-8-5-7-7’이었다. 2002년 10월 19일엔 롯데 홈구장인 부산 사직구장에 69명의 관중만이 입장할 정도였다. 역대 최소관중 2위다. 봄에만 야구를 잘하는 ‘봄데’였던 시절이다.

2008년 봄 최초의 외국인 감독인 제리 로이스터가 사령탑을 맡으면서 롯데는 변했다. 변화구에 맥없이 초구부터 배트를 휘두르는 1번타자 김주찬, 병역비리 사건에 휘말려 전성기가 지나버린 2루수 조성환, 외로운 4번타자 이대호,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새가슴’ 투수 장원준, 출격했다 하면 불을 지르는 투수 ‘임작가’ 임경완 등. 로이스터가 부임할 당시 롯데의 모습이다.

로이스터는 그해 홈 개막전이 시작되자 1루측 덕아웃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영어로 ‘노 피어(No Fear)’를 적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다.

병살타를 치고 들어오는 선수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가운데 스트라이크를 던져 홈런을 맞은 투수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반대로 배트 한번 휘두르지 않고 삼진아웃을 당하는 타자는 두말없이 교체했다. 볼넷을 남발하는 투수에겐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5점을 실점해도 6점을 내면 이길 수 있다며 선발투수를 교체하지 않았다. 로이스터의 매직은 전국을 뒤흔들었다. 결국 로이스터의 ‘노 피어’는 롯데에게 8년 만에 가을야구를 선사했다.

로이스터의 ‘노 피어’ 정신은 야구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하반기 취업 시즌이 본격 시작됐지만 최악의 청년층(15∼29세) 실업난은 여전하다. 한 취업전문 포털은 최근 대기업의 하반기 채용규모는 지난해보다 4.4% 증가하겠지만 중견기업의 경우 33.5%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그런 가운데 구직을 아예 포기하고 ‘그냥 쉬는’ 청년층이 취업 시장에서 계속 이탈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7월 고용동향을 보면 1년 내 취업 경험이 있는 취업단념자는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1만9000명(8.7%)이 늘었다. 특히 ‘쉬었음’이라고 답한 ‘백수’는 지난해 동기 대비 21만6000명(16.1%)이나 증가했다.

이들 취업단념자나 백수 상당수는 ‘고졸’과 ‘지방대’라는 ‘학력 우선 사회’를 탓한다. 물론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들에게 ‘노 피어’를 권하고 싶다. 끝없는 도전과 실패 속에 자신을 먼저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천년만년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롯데를 변화시킨 것은 유명감독의 혹독한 훈련이 아닌 한 이방인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노 피어’ 정신이다.

김영석 사회부 차장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