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 큰 별 최동원 지다… 전설을 던진 ‘영원한 에이스’

입력 2011-09-15 00:48


14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7호실 입구 사진 속 최동원은 자신의 오른팔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1984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 다섯 차례 등판해 4승(1패)을 올렸던 ‘무쇠팔’이었지만 말년에는 마운드에서 타석까지 던질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던 그 팔이었다.

최동원 전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이 이날 오전 2시2분쯤 경기도 일산병원에서 지병으로 숨을 거뒀다. 53세. ‘영원한 3할 타자’ 장효조(55) 삼성 2군 감독에 이어 1주일 만에 또 하나의 큰 별이 진 것이다. 13일 사상 첫 600만 관중 돌파로 잔치 분위기였던 야구계는 다음날 새벽에 날아든 야구 전설의 사망 소식에 충격과 함께 깊은 슬픔에 잠겼다.

한화 시절이던 2007년 대장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했던 최 전 감독은 한때 병세가 호전되는 듯했으나 지난해부터 다시 악화됐다. 지난 7월 22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경남고와 군산상고 간의 레전드 매치에 경남고 대표로 유니폼을 입었으나 수척해진 모습으로 야구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병약한 모습이었지만 최 전 감독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힘든 투병생활에도 고인은 후배들에게 “식이요법으로 몸이 좋아지고 있다. 나는 괜찮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고인의 친동생인 최수원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위원은 “형님이 투병 사실이 알려지는 걸 매우 싫어해 가족들은 형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며 “투병 중 특별한 말씀은 남기지 않았고, 가족들에게 ‘건강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했다”고 전했다. 특히 유족들은 고인이 충격을 받을까봐 장효조 감독 사망 소식도 알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고-연세대를 나온 고인은 프로야구 30년 동안 선동열 전 삼성 감독과 함께 프로야구 30년 최고 투수로 평가받는다. 경남고 2학년이던 1975년 경북고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1981년 실업야구 롯데에 입단했다. 당시 고인은 최우수선수상(MVP), 다승왕, 최우수신인상까지 독차지하며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1983년 프로로 전향한 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1, 3, 5, 6, 7차전에 나와 4승을 따내며 롯데의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이끌었다.

1985년에도 20승을 올리며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1988년 프로야구선수회 결성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삼성에 트레이드된 후 1990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은퇴 후 해설가와 지도자로 활약했으나 소원이던 롯데에서의 지도자 생활은 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고인의 사망 사실이 알려지면서 야구인들도 잇따라 빈소를 찾았다.

현역 시절 맞대결에서 1승1무1패를 기록하며 라이벌로 꼽혔던 선동열 전 삼성 감독은 “프로에 와서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지만 (형은) 나의 롤 모델이자 우상이었다”고 아쉬워했다. 이날 일찍부터 빈소를 지켰던 경남고 선배인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레전드 올스타전 당시 최 전 감독에게 ‘마운드에 한번 서 보는 게 어떠냐’고 했지만 최 전 감독은 ‘마운드에서 타석까지 던질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타석에라도 서는 기회를 주고 싶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현역 시절 고인의 라이벌 투수로 활약했던 김시진 넥센 감독은 “1주일 사이 야구계에 한 획을 그었던 이들이 그렇게 가 버렸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은퇴 선수들의 모임인 일구회의 구경백 사무총장은 “어제 600만 관중을 돌파하는 경사가 났는데 하루 만의 비보에 원로들이 다들 침통해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5년 동안 고인이 몸담았던 롯데 구단도 최 전 감독을 위한 추모소를 사직구장 2층에 있는 자이언츠 박물관 내에 마련하는 한편 고인을 명예감독으로 임명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롯데는 또 고인의 넋을 기리기 위해 고인이 생전에 기증한 유품을 진열하고 현역 시절 영상도 함께 상영할 예정이다.

발인은 16일 오전 6시다. 장지는 경기도 자유로 청아공원. 유족으로는 부인 신현주씨와 군복무 중인 아들 기호씨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고인의 빈소에 조화를 보내 유족들을 위로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