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단체장에 듣는다-①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회장] “동반성장, 대기업 총수 인식 바뀌어야 정착”
입력 2011-09-14 21:47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공생발전과 동반성장이 우리 경제의 새로운 모델로 부각되고 있다. 경제현장에서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제도나 관행들은 얼마나 개선되고 있을까.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최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가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납품단가 현실화, 중소기업 사업영역 침투 근절 등 핵심 분야에서 일부 대기업이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이 정부와 국민 여론을 의식해 ‘잠시 소나기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며 “동반성장 문화 정착을 위해 대기업 총수들의 인식전환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만난 사람=신종수 산업부장
-지난 1년간 진행된 동반성장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동반성장 대책 발표 이후 도입된 제도적 조치와 대기업의 노력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기술유용 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도입되고, SSM(기업형 슈퍼마켓)의 전통상업보존구역 진입 제한을 규정한 유통산업발전법이 개정되는 등의 진전이 있었다. 또 삼성과 SK그룹 등이 MRO(소모성 자재구매대행) 업체를 매각하거나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는 등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의미 있는 변화다.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납품대금 결제기간 단축, 현금결제 증가 등 하도급 거래 부분에선 개선의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중소기업 영역 침투 근절,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등 중소기업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분야에서 일부 대기업이 여전히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전체적인 변화 체감도는 낮다. 동반성장 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소통이 중요한데 대기업 총수들이 변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아직 갈 길이 멀다.”
-요즘엔 공생발전이 부쩍 강조되고 있는데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에 변화 조짐이 보이나.
“우리나라가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해 내년이면 50년이 된다. 그동안 우리 경제는 엄청난 발전을 했다. 하지만 그 부가 일부 대기업에 편중되면서 계층 간 소득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졌다. 이 부분에 대해 중기중앙회가 2∼3년 전부터 집중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왔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야속하다고 얘기하는 대기업도 있는데 대·중소기업 간 격차 문제가 공론화돼서 토론이 이뤄지고 건설적으로 개선되는 부분이 있다. 이제는 국민들도 ‘대기업이 두부, 콩나물까지 관여하는 건 너무한 것 아니냐’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 50년 뒤 여전히 대기업만 잘살고 양극화가 더 심해진다면 국민들이 가만히 있겠나. 공생발전이나 동반성장을 일부에서 포퓰리즘으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본질은 그게 아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동반성장 정책의 기조는 민간자율에 의한 것이다. 동반성장의 법률적 근거인 상생법 역시 자율성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중소상공인들이 체감하는 것은 동반성장이나 공생과 거리가 먼 것 같다.
“사실 소소한 먹을거리부터 MRO까지 싹쓸이하는 대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 비상장계열사 물량 몰아주기가 만연하고 있다. 특히 유통, 외식업 등 일부 업종에선 상황이 심각하다. 백화점들이 명품 브랜드의 입점 수수료는 적게 받으면서 우리나라 중소기업에 대해선 35∼40%씩 물린다. 주요 상권에 가면 한 집 걸러 한 집 꼴로 대기업 계열사가 하는 식당이다. 이 같은 대기업들의 경영행태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사회적 갈등이 커지면서 대기업의 인식전환을 촉구하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은 더 확대돼 왔다. 대기업 계열사는 2009년 4월 837개에서 지난 6월 1038개로 늘었고, 10대 그룹의 GDP 대비 자산비중은 2008년 55%에서 2009년 75.6%로 증가했다. 반면 2009년과 2010년 수출·내수 기업과 대·중소기업 간 영업이익 격차는 각각 7.7배, 3배로 확대됐다.”
-동반성장이나 공생이 현 정부의 일시적인 정책이 아니라 지속성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대기업은 동반성장을 등 떠밀려 추진할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미래 전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중소기업도 경쟁력 강화와 투명경영, 사회적 책임 강화 등 품격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진정한 동반성장이란 중소기업이 정당한 대가를 받아 설비투자, 기술개발에 힘써 경쟁력을 높이고 대기업은 이들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 가는 것이다. 특히 미래 성장동력 분야 관련 부품소재 분야에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려 산업연관효과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정부는 신뢰를 깨뜨리는 불공정 거래행위, 대기업의 계열사 물량 몰아주기 등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법 위반행위에 대해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우리도 무조건 중소기업을 지원해 달라고 이야기 안 한다.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을 수 있도록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중소기업은 구인난에 시달리는 반면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현상을 해결할 방법은 없나.
“중소기업 구인난의 가장 큰 원인은 대기업과의 임금 격차다. 중소기업 임금은 대기업의 59.9%에 불과하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적정 수준의 납품단가를 보장해 주고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자제한다면 ‘중소기업 임금인상 여력 확보→우수인재 영입→연구개발(R&D) 투자→수익 창출→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해소’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또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고교 졸업 후 중소기업에 우선 취업한 뒤 대학에 진학해 업무역량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기업이 협력사와 함께 사내 대학을 설립해 근로자의 대학 진학을 돕는 것도 상생협력의 모범사례가 될 것으로 본다.”
-중기중앙회가 추진하는 다른 현안은.
“중소기업 전용 홈쇼핑, 제4이동통신사업 진출 등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 초 개국하는 중소기업 전용 홈쇼핑은 판매 수수료율을 낮추고 직매입제 등을 도입해 판매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의 판로 확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제4이동통신사업은 주요 주주 구성 등이 마무리되는 대로 이달 중순쯤 방송통신위원회에 허가 신청을 낼 예정이다. 중소벤처기업 육성시설인 글로벌지원센터도 내년 6월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에 지상 20층, 지하 6층 규모로 들어선다.”
정리=권지혜 기자 jhk@kmib.co.kr
김기문 회장은
김기문 회장은 300만 중소기업을 대변하는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자 자수성가한 기업가다.
2007년 2월 4년 임기의 중기중앙회 회장에 취임한 그는 올해 2월 연임에 성공했다. 중소기업 안팎에선 “김 회장 취임 후 사회적으로 중소기업 문제가 공론화되고 개선책이 마련되는 등 전반적으로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회장은 1988년 손목시계 제조업체 ‘로만손’을 설립해 연매출 800억원대의 기업으로 키웠다. 로만손은 현재 전 세계 72개국에 제품을 수출해 연간 2500만 달러 이상의 수출 실적을 올리고 있다. 피겨 여왕 김연아가 광고 모델로 활약 중인 주얼리 브랜드 ‘제이에스티나’도 로만손 제품이다. 제이에스티나는 올 하반기부터 걸그룹 소녀시대를 모델로 내세워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칠 계획이다.
김 회장은 충북 괴산 출생으로 청주농고를 졸업했다. 2001년 8월 서울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하고 2008년 2월 충북대 명예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8년 4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 그해 10월 저탄소녹색성장국민포럼 공동 의장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