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품 팔아도 허탕… 1억대 싼 매물은 대부분 외곽에
입력 2011-09-14 00:41
결혼 앞둔 국민일보 기자, 서울 전셋집 구하기 체험해보니
‘씨가 말랐다.’ 결혼을 앞둔 4년차 기자가 체험한 수도권 전세 시장의 실상이다. 전세 물건 자체도 부족할뿐더러 1억원대 아파트 전세 물량 80%는 노원·강북·도봉·강서·금천구 등 서울 외곽에 집중됐다. 지난 한 달간 부동산 중개업소 10여곳에 아파트 전세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연락을 받은 곳은 2곳에 불과했다. 간간이 나온 매물은 20년 이상 된 노후 건물이 대부분이었다.
◇1억원대 아파트 전세는 서울 외곽에만=기자는 지난달 중순부터 서울에서 아파트 전세 구하기 ‘작전’에 돌입했다. 첫 작업은 서울 전 지역 시세 분석.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속칭 ‘낚시’ 매물을 이용했다. 부동산 업자가 대형 포털사이트에 직접 올린 전세 물건 내역이다. 실제 가격은 인터넷 가격보다 500만∼1000만원가량 더 비싸거나 이미 팔린 물건이 올라와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주말 외에는 발품 팔기가 어려운 직장인들에게는 귀한 정보다.
목표는 전세 1억∼1억5000만원 이하 아파트(주상복합, 재건축 포함). 공급면적 66∼99㎡ 기준으로 497개 물건이 검색됐다.
물건은 대부분 노원구(254개), 도봉구(91개) 등에 몰려 있었다. 그나마 출퇴근이 용이한 곳은 마포구 35개, 강서구 28개, 금천구 19개, 구로구 15개, 양천구 11개 등이 전부였다. 나머지 지역은 전세 물건이 10개 미만이었고, 관악·서대문·서초·성동·용산구는 이 가격대 건물이 한 건도 없었다.
가격대를 1억5000만∼1억8000만원으로 올려 봤다. 역시 노원구가 103개로 최다 매물지로 나타났다. 이어 강동(76개), 강북(56개), 도봉(56개) 등 출퇴근 거리가 최소 1시간20분 이상 되는 지역에 전세 물건이 집중됐다.
도심 접근성이 좋은 물건은 구로구 55개, 강서구 46개, 양천구 40개, 영등포구 30개, 마포구 19개 등 200개가 채 안 됐다. 1억8000만∼2억원 정도로 눈높이를 높여야 양천구(72개), 영등포구(72개) 등이 최다 매물지로 올라왔다.
◇“중개업소 전화 5분 대기조는 돼야”=마포·구로·영등포구 지역을 목표로 삼고 해당 지역 부동산 중개업소에 전화를 걸어 매물을 확인했다. 역시나 인터넷 전세 물건 정보는 허수(虛數)가 많았다.
부동산 업자들의 첫마디는 “요즘 전세가 너무 없다” “올려 놓은 전세 물건은 이미 나갔으니 연락처를 남기면 나중에 연락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일단 전세 물건이 있다는 서울 오류동 아파트 단지 부동산을 찾아갔다. 단지 상가에는 부동산 중개업소 4곳이 나란히 있었지만 전세 시세 전단지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중개업소에 들어서 물건을 보여 달라고 하자 “오전에 계약 끝났다”는 답변을 받았다. 중개업자 김모씨는 “전세 물건 자체가 희귀하다 보니 전단지에 전세 물건을 붙여 놓을 일이 없다”며 “물건 나오면 바로 계약하자는 고객만 10명”이라고 말했다.
지난 8일 찾아간 서울 성산동 아파트 단지의 경우 1억원대 물건은 공급면적 69㎡(21평형·1억5500만), 82㎡(25평형·1억7500만) 형 각 1개씩 2개가 전부였다. 모두 1986년 준공 이후 수리 없이 25년이나 유지된 노후 건물이었다. 건물 자체가 낡아 곳곳에 금이 간 자국이 뚜렷하게 보였다.
H부동산 중개업소 이모 실장은 “25평형의 경우 싱크대와 섀시 수리한 뒤 지난달 1억8500만원까지 거래된 경우도 있었다”며 “최근 2년 새 5000만원이나 오른 셈”이라고 말했다.
머뭇거리는 사이 전세 가격은 계속 급등했다. 시세도 한 달 새 1000만∼2000만원가량 오른 곳이 허다했다. 서울 상암동의 84㎡ 형 아파트는 지난 8월 11일 2억4000만원에서 지난 2일 2억7000만원으로 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전세가 워낙 비싸 최근 부동산 업자들이 전세보다 급매를 권하기도 한다”며 “그러나 매매가격이 계속 하향 추세에 있어 고객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