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왜 국민 스포츠 됐나… 프로화·지역 연고제 확실히 정착된 게 힘

입력 2011-09-13 17:04

프로야구가 전 국민의 인기스포츠가 된 것은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스포츠의 프로화가 진행됐고, 지역 연고가 확실히 정착됐기 때문이다.

1970년대 고교와 실업 야구로 국민들의 인기를 끌었던 야구는 1982년 프로화가 이뤄졌다. 정부는 프로야구를 기획하면서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의 지역 연고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프로야구 원년에는 연고지 별로 서울은 MBC 청룡, 부산은 롯데 자이언츠, 대구는 삼성 라이온즈, 인천은 삼미 슈퍼스타즈, 광주는 해태 타이거즈, 대전은 OB 베어스가 각각 탄생됐다.

특히 당시엔 지역 연고별 드래프트가 이뤄져 선수들도 자신의 고향 팀에서 뛰는 경우가 많았다. 경남고 출신의 최동원은 롯데, 대구상고를 나온 이만수와 김시진은 삼성, 군산상고에서 활약한 김봉연과 김성한은 해태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내 고향 선수들이 고향 팀에서 빼어난 활약을 하는 것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관중이 당시에는 많았다.

지역 연고 드래프트가 차츰 약화돼 2009년 완전히 없어져 지역 스타플레이어의 탄생은 이제 불가능하게 됐지만 여전히 일반 국민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을 대표하는 구단을 고향 팀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 해외파 선수들도 프로야구에 가세해 이전 고교나 실업 야구에 비해 수준 높은 경기를 보여줬다. 일본과 미국에서 활약했던 백인천(MBC)과 박철순(OB)은 프로야구 원년에 각각 4할 타율과 22연승이라는 깨기 힘든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 같은 프로야구의 인기는 신생팀 창단으로 이어졌다. 86년 제7구단 빙그레가 창단한 데 이어 91년에는 쌍방울이 프로야구에 뛰어들며 8개 구단 체제가 완성됐다.

프로야구는 외환위기와 프랜차이즈 선수들의 잇따른 해외 진출로 한동안 암흑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스타 선수들의 등장과 국제 경기에서 한국야구의 대 활약으로 다시 인기를 회복했다.

삼성의 이승엽은 2003년 아시아 신기록인 56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국민들의 관심을 일깨웠다. 야구 대표팀은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을 시작으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제2회 WBC 준우승,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며 한국 야구의 위상을 세계에 떨쳤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프로야구는 프로스포츠 중 일주일에 가장 많은 경기를 한다”면서 “여기에 TV와 인터넷 등 뉴미디어가 결합돼 야구장에 대한 인식이 승부를 보는 것보다 가족단위로 즐기는 문화공간으로 바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허 위원은 이어 “야구장 시설이 좀 더 확충되고, 지방자치단체가 좀더 신경을 써 10·11구단이 탄생하면 프로야구의 인기는 더욱 커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