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폐기물 해양투기 언제까지… ‘연간 448만t’ 국민 1인당 100㎏씩 바다에 버린 셈

입력 2011-09-13 22:23


환경단체들은 지난 5월 31일 바다의 날에 “대한민국은 바다를 쓰레기장으로 여기는 나라”라고 비난하며 정부에 대책을 촉구했다. 정부는 육상폐기물의 해양투기를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금지키로 하고 관련법 시행령을 마련했다. 그렇지만 당장 내년부터 해양투기가 금지되기는 어렵다. 생활하수와 산업폐수를 처리하고 남는 찌꺼기(오니) 등의 처리시설이 부족해 재활용과 매립 실적이 목표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해양투기 작업을 하는 19개 업체는 생존권을 위협한다며 지난달 말부터 조업을 거부했다.

◇해양투기 실태, 해마다 100만t씩 줄어=지난 한 해 동안 우리나라 해역에 버려진 유기성 폐기물은 447만8000t에 달했다. 국민 1인당 100㎏에 해당한다. 해양투기의 범지구적 규제를 위한 런던협약 가입국 가운데 가장 많은 폐기물을 바다에 버리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나마 해양투기 저감정책이 시행되기 직전인 2005년에 사상 최고치인 975만t을 버린 것에 비하면 절반가량 줄어든 양이다.

바다 밑바닥의 오염물질은 해저생물, 특히 움직임이 적은 패류와 갑각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2007년 동해 바다 2000m 아래서 잡힌 홍게에서 돼지털과 머리카락이 발견돼 수출이 6개월간 중단됐다. 당시 해양수산부는 해당 해역 홍게 조업을 영원히 금지했다. 이처럼 폐기물 해양투기는 수산물의 상품성을 낮춘다. 공해상에 버려지는 폐기물은 주변국과의 환경 분쟁을 낳기도 한다.

◇런던협약과 런던의정서=1960년대 후반 발트해에서 고농도 비소가 검출됐다. 곧 주변국 간 환경 분쟁으로 비화됐고, 72년 런던협약으로 이어졌다. 모든 산업폐기물의 해양투기를 금지하고 준설물질, 하수오니, 천연·비오염 유기물질 등 6개 항목만 지침에 따라 검토 후 허가한다는 것이 골자다.

96년 11월에는 런던의정서가 채택돼 2006년 3월 발효됐다. 공해뿐 아니라 내해도 규제 대상에 새로 포함됐고 런던협약의 사전예방 원칙에 오염자 부담 원칙이 추가됐다. 투기허가 발급 현황과 투기해역 환경상태를 매년 보고해야 하는 등 당사국의 준수 의무를 강화했다. 현재 39개국이 런던의정서에 가입했다. 우리나라는 2009년 1월 가입했다.

런던의정서 등에 따라 폐기물은 먼바다의 지정된 해역 안에만 투기하도록 돼 있다. 현재 동해병(경북 포항시 동쪽 125㎞ 해역), 동해정(울산 남동쪽 63㎞ 해역), 서해병(전북 군산시 서쪽 200㎞ 해역) 등 세 구역이 지정돼 있다. 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해양투기가 시작된 이래 지난해까지 24년간 1억2300만t 이상의 폐기물이 바다에 버려졌다.

◇해양투기 폐기물의 종류와 특성=한국해양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바다에 버려진 폐기물 448만t 가운데 음식물 폐수가 110만t(24.5%)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하수처리 오니 109만t(24.3%), 가축분뇨 104만t(23.3%), 산업폐수처리 오니 87만t(19.4%), 폐수 31만t(6.9%) 등이다. 기타 준설토, 인분, 수산가공 잔재물 등이 나머지 7만t(1.6%)을 차지했다.

한국해양연구원 특정해역보전관리연구센터 정창수 센터장은 “하·폐수처리 오니는 강이나 연안에 버릴 경우 방류수 수질기준을 충족해야 하지만 공해에 버릴 경우 해양배출 처리기준만 통과하면 된다”면서 “해양배출기준은 방류수 수질기준보다 10∼100배가량 더 느슨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유기성 오니의 해양방류 허용 기준은 25가지 화학물질 기준과 생물독성 테스트 가운데 하나만 충족해도 통과된 것으로 간주한다. 정 센터장은 “중국 필리핀에 이어 일본도 2007년 하·폐수 오니의 투기 금지를 법으로 정해 축산폐수를 포함한 유기성 오니를 바다에 버리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말했다.

폐수종말처리장과 산업체로부터 나오는 폐수 오니가 가장 해롭고, 하수 오니에도 약간의 중금속이 포함돼 있다. 가축분뇨에는 항생제가 남아 있고 성장촉진, 전염병 예방을 위한 보조사료에 들어 있는 구리 등 중금속과 화학물질도 있다. 가장 안전하다는 음식물 폐수도 해양미생물에는 급성독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하수처리 오니와 가축분뇨는 내년부터, 음식물 폐수는 2013년부터 해양투기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의 관련법 시행령을 14일 입법예고한다. 그러나 산업폐수처리 오니와 폐수는 투기금지 일정도 제시되지 않아 사각지대에 남아 있다. 산업체의 비용 절감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슬그머니 빠진 것이다.

◇부처별 입장과 대안, 전망=해양배출 업자와 육상 재활용 업체는 정확하게 상반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해양투기가 줄면 재활용과 매립 관련 업계가 성장할 것이고, 해양투기가 존속되면 그 반대다. 산업폐수 배출 기업과 축산농가 등 오염 원인자는 싸게 처리하는 방식만을 생각한다. 따라서 처리 비용이 절반 이하인 해양투기를 선호한다. 폐기물 처리를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정부 부처도 각기 조금씩 다른 입장과 강조점을 갖고 있다. 지금은 소각·재활용·하수오니 처리시설 건설이 2011년까지의 계획에 비해 크게 부진하다. 님비현상 때문이라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충남 계룡시나 제주도처럼 이미 해양투기를 아예 없앤 곳도 있다. 정부가 계획대로 해양투기 금지를 강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재활용 기술과 시설투자가 부진한 측면도 있다. 따라서 국토해양부는 예고된 대로 해양투기 금지를 확실하게 실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광렬 해양환경정책관은 “투기금지 조치의 유예나 연기는 검토 대상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다만 하수오니의 경우 당분간 병목현상을 해소할 때까지 시행규칙을 통해 뒷문을 열어두는 방안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수 및 폐수 오니 처리를 담당하는 환경부는 “내년부터 투기 금지는 무리”라고 말했다. 반면 농림수산식품부는 이 기회에 축산농가 구조조정을 위해 가축분뇨 해양 투기는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육 두수가 국토에 비해 과잉상태라는 인식 때문이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