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종석 (6) 아내와 사별 3년… 방황·시련끝에 주신 새 만남

입력 2011-09-13 16:59


1984년 지금의 서울광혜내과의원을 개원하고 나서 무척 바빴다. 병원 일과 함께 갑상선학회 일을 병행했기에 해외 출장이 잦았다. 아내는 가끔 기침을 했지만 건강에 이상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주일엔가 내가 다니던 서울 충현교회를 올라가는데 아내가 숨이 차서 제대로 올라가지 못하는 거였다. 그때 번득 ‘혹시 심장에 이상이 있나’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하지만 학회 일정 때문에 곧바로 검사를 하지는 못했다. 학회에 다녀온 뒤에야 심전도 검사를 했는데 심장판막증이라는 충격적인 진단이 나왔다. 피를 제대로 공급해주기 위해서는 심장의 문짝(판막) 작용이 활발해야 하는데 그게 항상 열려 있는 것이었다. 피는 뇌뿐만 아니라 신장으로도 잘 공급되지 않아 아내는 신부전까지 앓았다.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된 것같은데 아내가 깨어나질 않았다. 수술할 때 인공심장을 끼워 넣었는데 원래의 심장이 수술 후에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수술 후 심장을 꿰매야 하는데 꿰매지 않은 것이다. 명백한 의료사고였다. 아내는 1개월간 중환자실에서 지내다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말았다.

앞이 캄캄했다. 병원 지은 지는 얼마 안 되고, 빚은 산더미같이 쌓여 가는데 길이 보이지 않았다. 병원 건물 기둥을 부여잡고 간절히 울면서 기도했다. 그래도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새벽 1∼2시에 차를 몰고 경기도 광주, 이천으로 쏘다녔다. ‘이러다 망가지는구나’라는 불길한 생각도 들었다.

나는 홀로 있으면서 서울 가락동농수산물시장을 자주 찾았다. 그곳엔 과일가게, 야채가게, 생선가게가 즐비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생선시장에 들렀다. 아침의 생선시장은 “생선 사려”를 외치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힘찬 목소리로 활력이 넘쳤다. 서민들의 생업 현장에서 난 삶의 의욕, 목적을 조금씩 되찾아가고 있었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 실연을 당한 사람, 기쁨과 희망을 상실하고 실의에 빠진 사람이 있거든 반드시 새벽 생선시장을 둘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곳에서는 실의와 좌절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오직 생동감과 즐거움이 있을 뿐이다.

나는 한곳에 마음을 두면 바꾸지 않고 우직하게 한곳만 거래하는 습관이 있다. 한 과일가게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30여년간 다니고 있다. 모 교회 집사님이고 해서 믿음이 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집사님이 추천해주는 과일은 틀림없었다.

그렇게 홀로 된 생활을 3년쯤 했을 때 교회 권사님이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아무 말 말고 몇 날 몇 시에 어디로 나오라는 얘기였다. 망설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새벽 생선가게에서 체득했던 강렬한 삶의 의지, 활력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일으켜주신 거라 생각했다. 용기를 냈다.

사람의 일생 속엔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만남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아내인 김 권사와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권사님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많은 얘기를 주고받지는 못했지만 남은 생의 반려자가 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둘은 인간적인 여건과 확률로 따진다면 도저히 만남이 불가능한 사이였다.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가 바로 이런 거구나’ 하는 걸 그때 새삼 느꼈다. 김 권사를 만나 상처(喪妻)의 아픔도 차츰 씻으면서 병원 일과 교회 사역에 다시 집중할 수 있었다.

정리=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