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대책 虛와實] 차별 철폐한다더니… 근로자 주름살 펴기엔 역부족

입력 2011-09-10 01:22


정부와 한나라당이 9일 내놓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동종·유사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 간 불합리한 차별 해소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기존 제도를 일부 수정·보완하는 선에 그쳤다.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비정규직 대책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부터 추진되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사실상 멈춰섰다. 3년여를 그냥 보내다 최근 청와대에서 공정사회와 공생발전을 화두로 내건 뒤 부랴부랴 다시 대책을 꺼내든 것이다.

◇무슨 내용 담았나=이번 대책에서 당정이 가장 비중을 둔 부분은 영세사업장 저임금 근로자에게 사회보험료 3분의 1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내년 상반기 중 2개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펼친 뒤 하반기부터 전국으로 확대키로 했다.

저임금 근로자 1인당 고용보험, 국민연금 보험료로 1년 동안 평균 25만원을 지원받게 된다. 이 대책이 시행되고 저임금 근로자 중 미가입자의 절반이 가입한다면 고용보험은 70만명, 국민연금은 60만명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추산됐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정부가 좀더 도와줘 본인 스스로 근로를 통해 취약계층에서 벗어나도록 적극 유도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 없이 지원되기 때문에 비정규직 대책보다는 ‘근로 빈곤층’ 대책에 가깝다. 대학의 장학생 선발과 기숙사 및 국공립 보육시설 이용자 선정에 저소득 근로자 자녀를 우대하는 방안, 국민임대주택을 공급할 때 저소득 비정규직 근로자를 우대하겠다는 내용도 근로 빈곤층을 위한 복지 혜택의 성격이 짙다.

당정은 비정규직 차별을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는 근로감독관에게 차별시정 지도·감독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핵심으로 내세웠다. 현재는 차별받은 당사자가 신청하면 심사를 거쳐 노동위원회가 시정명령을 내린다. 불이익을 우려한 당사자가 신청하기 어렵고 차별받은 사람이 일일이 심사를 신청해야 하기 때문에 일괄적 구제가 어려웠다.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을 줄이기 위해 ‘임금 및 근로조건 차별개선 가이드라인’도 만들기로 했다. 정규직에게 일괄 지급되는 작업복, 명절 선물, 식당·주차장·샤워장·통근버스 등 사내 복지시설과 상여금을 비정규직에게도 주도록 대기업 노사가 노력하라는 의미다.

◇헛돈 비정규직 대책=이번 대책은 급조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나라당에서는 4개월 전부터 연구를 시작했고, 정부는 지난달 광복절 기념식에서 이 대통령이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거론하면서 본격적으로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주창한 이명박 정부는 출범과 함께 2006년부터 시작한 비정규직 대책을 백지화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광복절 직후 “새 정부 출범 이후 비정규직 대책에 손을 떼고 있은 탓에 기초 통계 파악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이번 대책 중 상당 부분은 이미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6년 9월 발표한 비정규직 고용개선 종합계획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정이 ‘정규직 이행 기회 확대’ 방안으로 대책에 포함시킨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한도 확대는 기획재정부가 세법개정안에서 발표한 내용을 슬쩍 끼워 넣은 수준에 불과하다. 그나마 불법 파견으로 확인된 경우 사용기간에 관계없이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토록 한 것, 직접 수행 업무를 사내 하도급으로 전환할 때 노사협의회에서 의무적으로 협의하도록 한 점은 진일보한 조치라는 평가다.

2006년 내놓은 대책은 2010년을 목표로 추진됐었다. 당시 정부는 2010년까지 정규직 대비 임금 수준을 70%로 끌어올리겠다고 했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을 20%대로 높이겠다고 했었지만 정책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비정규직 규모는 오히려 증가했고 차별은 줄지 않고 있다. 정부는 2008년까지 근로기준법을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되도록 개정해 비정규직 근로자를 보호하겠다고 했지만 이마저 지켜지지 않았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