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운’ 시리즈 전규환 감독 “도시인들의 슬픔 외로움과 상처 그대로 보여주려 노력”

입력 2011-09-09 16:16


‘모차르트 타운’(2008), ‘애니멀 타운’(2009), ‘댄스 타운’(2010).

마흔이 넘어 메가폰을 잡은 늦깎이 영화감독 전규환이 2008년부터 매년 한 편씩 만든 타운 시리즈 3부작이다. 양육강식의 비정한 논리가 지배하는 도시,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도시인들의 삶을 건조한 시선으로 그려낸 연작들이다. 타운 3부작은 해외 영화제에 잇따라 초청돼 “고유한 통찰력”을 가진 작품이라는 호평을 얻었고, 스페인 그라나다 영화제와 미국 달라스 영화제 대상(댄스 타운) 등 해외에서 상도 여럿 받았다. 지난 2월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3부작 특별전이 열렸고 이달 마지막 주에는 세계 최고 미술관 중 하나인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3부작이 상영될 예정이다. 10월에는 이탈리아 토리노영화제, 11월에는 미국 덴버국제영화제에서도 특별전이 예정돼 있다.

해외에서 이정도 ‘대접’을 받는 한국 감독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그는 국내에서는 찬밥 신세다. ‘애니멀 타운’이 지난 3월 어렵게 개봉됐지만 얼마 안가 조용히 내려졌다. ‘댄스 타운’이 상반기 영화진흥위원회의 다양성영화 개봉 지원작으로 선정된 덕에 지난 1일 몇 개 상영관에서 개봉됐지만 반응은 역시 신통치 않다. ‘모차르트 타운’은 완성 3년만에 오는 15일 개봉을 앞두고 있지만 전 감독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눈치다.

할 말이 많을 것 같아 지난 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카페에서 전규환 감독을 만났다.

-‘타운 시리즈’는 처음부터 3부작으로 기획한 건가.

“아니다. 2008년 초 ‘모차르트 타운’이 도쿄영화제에 초청됐는데 반응이 괜찮았다. 도시에 대해 더 하고 싶은 얘기가 생각나 돌아오자마자 ‘애니멀 타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2009년에 찍었다. 또 ‘애니멀 타운’을 만들어 스페인의 산 세바스찬영화제에 갔는데, 다른 이야기가 또 생각나 ‘댄스 타운’까지 만들었다.”

-도시 이야기를 3편이나 만든 이유가 궁금하다.

“도시는 화려하고 에너지가 넘쳐 보이지만 다른 모습도 있다. 화려한 빌딩 뒤에 가려져 있는 도시인들의 슬픔, 외로움, 그리움, 상처 등을 나만의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데뷔작 ‘모차르트 타운’은 그의 작품세계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행복한 여행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쓸쓸하고, 비참하고, 비정한 도시의 맨얼굴을 절제된 영상으로 담아냈다. 전 감독은 “여행자가 지나간 자리에는 남겨진 사람들이 있다. 난민, 불법 이주노동자, 소아성애자(어린이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병적인 사람) 등 실제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전 감독의 영화가 호평 받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인물에 접근하고 도시를 표현하는 방식이 색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이야기를 기교로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려고 한다. 그런 생각으로 시나리오도 쓰고 연출도 한다.”

-국내에서는 반응이 좋지 않은데.

“다양한 영화를 학습하지 않은 관객에게 내 영화는 불편할 수 있다. 익숙한 내용과 형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50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인데 우리 영화들은 너무 천편일률적이다. 음악과 드라마 등 다른 문화산업도 너무 획일화돼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영화 관객에는 다양한 영화에 훈련이 돼 있는 관객과 상업영화에만 길들여진 관객이 있다. 영화자본들은 흥행이 안 되는 작품은 아예 외면한다. 그런 영화는 만들어도 좀처럼 극장에 내걸 수 없다. 상영시간도 아침이나 심야에 배정되는 게 대부분이다. 미국에는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는 아트하우스나 예술영화상영관들이 의외로 많다. 프랑스도 방송 수익의 일정 부분을 독립영화에 지원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의 말은 우리 정책 당국도 영화의 다양성을 높일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취지로 들렸다.

-영화 연출을 하며 특히 중시하는 게 있나.

“캐릭터를 한 꺼풀씩 벗기고 또 벗겨서 내면의 감정과 생각, 그를 둘러싼 환경을 포착하고 이를 진정성 있고, 디테일(세밀)하게 표현하려고 한다. 배우에게도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연기를 주문한다. 지나치게 ‘연기’하지 않도록 손발을 꽉 묶어놓는 편이다. 스태프들도 (영화가 돋보이는) 기술을 활용하지 못하게 한다. 기술을 부리는 순간 영화는 사실과 멀어지고, 오버하고 과장되기 마련이다.”

-감독 데뷔가 늦었는데(그는 매니지먼트 회사와 영화 제작사 대표 등으로 충무로에서 10여년간 활동해 오다 뒤늦게 영화 연출에 뛰어들었다).

“내용이나 형식 뿐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주체도 지금보다는 스펙트럼이 더 넓어져야 한다. 나이가 어느정도 들어야 세상을 바라보는 원숙한 시선을 갖출 수 있다. 우리 영화 시스템은 너무 산업화돼 있다. 소재가 한정돼 있고, 주 관객층도 10대에서 20대 초중반에 맞춰져 있다. 나와 같은 40대나 우리 아버지 어머니 또래들도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 영화는 그걸 담아내는 데 역부족하다. 독립영화마저도 젊은 세대에게만 눈길을 주는 것 같다.”

-앞으로 계획은.

“타운 시리즈는 3편으로 끝냈다. 이제는 다른 이야기를 해 볼 생각이다. 윤동환 주연의 ‘바라나시’란 멜로영화의 촬영과 편집을 이미 끝낸 상태인데 올해 안에 개봉할 계획이다. 멜로지만 기성 작품들과는 다른 나만의 멜로 이야기다.”

전 감독은 사회성 짙은 작품들로 이름을 알렸지만 그런 류의 영화만을 고집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는 “다양한 영화들을 생각하고 있다. 코미디도 만들고 싶고, 그로테스크(기괴)한 영화나, 미술·음악영화 등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 방식대로 풀어가는 건 포기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