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침구 개량에 몰두한 장인의 발자취… 국립민속박물관 ‘옷에 날개를 달다’ 전시회
입력 2011-09-08 18:51
“평생 동안 모은 복식자료가 한복에서 양복으로 건너가는 한국 근현대 패션사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원로 복식학자 손경자(81·사진)씨는 1956년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 가정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의생활전공 교수로 부임한 뒤 95년 정년퇴임하기까지 한복과 침구 등의 개량화 작업에 몰두했다. 59년 당시 한 학생이 가져온 구멍 뚫린 베개를 보고 직육면체의 여섯 면에 구멍을 내 공기가 잘 통하도록 고안한 불로침(不老枕)은 요즘의 건강·웰빙 생활용품이나 다름없다.
62년 서울 세검정 근처 세물전(혼례나 상례복을 대여해 주던 상점)에서 구입한 여성 혼례복 활옷은 1910년대 제작된 것으로 모란봉황 무늬를 화려하게 수놓은 것이 일품이다. 100여년 전 전통 혼례복이 이처럼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63년 한·일 양국에서 열린 한·일 친선 패션쇼에 출품한 그의 개량한복은 서양 옷 디자인을 한복에 접목시킨 것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88∼91년 한국복식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한국 의상 발전을 위해 노력한 그의 저서 ‘의상디자인畵기본’(1986)은 국내 전문가에 의해 처음 출간된 스타일화 전문서적이다.
제자 양성에 힘쓰면서도 사라져 가는 우리 의상을 수집하고 새로운 것을 디자인한 손씨는 50년가량 간직하고 있던 국내외 복식 관련 자료 550여점을 2008년부터 올해까지 3차례에 걸쳐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했다. 그의 기증품은 박물관 내 기증실에서 ‘옷에 날개를 달다’라는 제목으로 10월 17일까지 선보여진다.
120여점의 전시품에는 활옷 등 수집품과 불로침, 개량한복 등 손수 디자인한 작품은 물론 그가 즐겨 입었던 60년대 옷과 구두, 핸드백, 모자 등도 포함됐다. 개인의 취향과 시대유행이 잘 드러나는 유물들이다. 또 손씨의 어머니가 누에를 길러 천을 짜고 바느질해서 만든 두루마기와 버선도 전시된다.
손씨는 “어머니는 바느질 솜씨가 좋았다. 내가 의상을 전공한 것도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회고했다. 중국 마오족의 여성 상의 등 해외 전통복도 함께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평생 복식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몸담은 손씨가 직접 사용하고 수집한 근현대 복식자료라는 점에서 민속학적 의미가 있다고 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