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태이후 40여일 남태령 전원마을 가보니… “이 지경인데 명절기분 나겠어요”

입력 2011-09-08 18:30


추석이 다가오고 있지만 우면산 산사태로 5명이 사망한 서울 방배동 남태령 전원마을은 명절과는 동떨어진 분위기였다. 산사태가 난 지 40여일이 지난 8일 전원마을에는 굴삭기와 공사 차량들이 흙먼지를 흩날리고 있었다. 집집마다 쌓아 놓은 모래포대와 가전제품 그리고 산 절개지를 따라 덮어 놓은 방수포가 마을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었다.

집수리를 하던 주민 임방춘(65)씨는 아들을 잃은 충격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서울시와 서초구를 상대로 한 소송 준비도 계속했다. 임씨는 “낮에는 관청과 싸우고 밤에는 죽은 아이 생각에 운다”면서 “명절이면 더 (아들이) 생각날 것 같다”고 말했다. 임씨의 둘째아들 중경(34)씨는 배수 작업을 돕다 집 앞 상수리나무에 깔려 숨졌다. 임씨는 “그날 아침 내가 불러내지만 않았어도…”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임씨는 소송을 위해 마을 경비원의 진술서를 받아오는 길이라며 펼쳐 놨다. 서초구에 집 앞 상수리나무를 잘라줄 것을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묵살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서초구는 천재(天災)라는 입장만 고수하는데 천재란 단어는 최선을 다하고 어쩔 수 없을 때 쓰는 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주민들도 다가오는 명절이 힘겹기만 하다. 문구점을 운영하는 이창민(33)씨는 매년 추석이면 고향집을 찾지만 올해는 가지 못한다. 이씨는 “가게는 빚을 내 어느 정도 정리됐지만 아직 집은 복구하지 못했다”며 “추석 분위기는커녕 생계가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산사태로 손해가 5000만원 정도 났는데 대출은 1900만원 밖에 받지 못했다고 했다.

집 주인 정모(55·여)씨는 집수리 비용과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마련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씨는 “세입자들이 정이 떨어져 동네에서 나가겠다고 해 집수리 비용과 보증금을 마련하느라 은행 대출을 신청했다”며 “새로운 세입자를 찾는 것은 포기했다. 누가 이 동네로 이사오겠느냐”고 말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