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울타리 넘어 고추 훔치다 감전사…밭 주인 배상 판결

입력 2011-09-08 20:27


고추밭에서 몰래 고추를 따려다 전기울타리에 감전돼 숨졌을 경우 밭주인이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정부가 농가에 지원금까지 지급하며 권장했던 전기울타리에서 인명사고가 계속되는 가운데 손해배상 판결은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93단독 이명철 판사는 고추밭에 몰래 들어가다 전기울타리에 감전돼 사망한 A씨의 유족이 밭주인 B씨, 한국전력공사, 한국전기안전공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8일 밝혔다.

이 판사는 “밭주인이 야생동물 피해를 막기 위해 전기울타리를 설치했으면 감전 위험을 경고하는 표지판을 설치하고 안전하게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A씨가 농작물을 함부로 채취하려고 밭에 들어가다 사고를 당했고, 통행을 금지하려는 의도가 명확한 전기울타리를 억지로 넘어 고추를 따려고 한 잘못이 있다”며 밭주인의 책임을 30%로 제한했다. 이 판사는 한전과 전기안전공사의 책임은 물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A씨는 2009년 7월 강원도 강릉시 심곡리의 도로변 고추밭에 허락 없이 들어가 고추를 따려고 했다. B씨는 2009년 6월부터 고라니 등 야생동물 침입을 막기 위해 220V 전기가 흐르는 울타리를 설치했다. A씨는 전기울타리에 감전돼 사망했다. 이에 유족들은 지난해 11월 “고추밭 주인이 통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전기울타리를 만들고 관리를 제대로 안 해 사고를 당했다”며 소송을 냈다.

전기울타리는 사람이 만져서 따끔한 정도의 약한 전류가 흐르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공사 자격이 없는 농민들이 직접 설치하면서 변압기를 달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전기울타리는 1만2000여개에 이른다. 지난 7월 6일 경기도 파주에서는 한 군인이 구보 중 휴식하다 전기울타리에 감전돼 숨지는 등 2009년부터 전기울타리 감전사고로 7명이 사망했다.

노석조 기자 stonebir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