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4% 목표 달성 못할 수도”… 한은, 물가 관리 실패 자인
입력 2011-09-08 18:21
한국은행 김중수 총재가 사실상 한은의 물가 대응 실패를 인정했다. 기상이변 등을 감안하더라도 한 해 물가상승률이 물가안정 목표의 상한선인 4.0%마저 넘어선다는 것은 물가안정이 존재 이유인 한은으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고물가 행진을 지켜보면서도 금리정책을 쓰기 어려운 답답한 상황으로 점점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초에는 ‘한은 물가 책임론’이 본격 대두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한은 물가전망 신뢰도 상실=“우리가 예상한 물가 목표를 넘을 것 같다. 하지만 금리정책을 쓰기는 어렵다.”
김 총재가 8일 금통위 회의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발언의 골자다. 한은이 처한 딜레마와 함께 선제 대응에 실패한 중앙은행의 무기력함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는 평가다. 물가는 고공행진하고 있지만 세계경기의 하강추세가 뚜렷해지면서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상실한 국면에 빠졌다는 것이다.
우선 한은은 물가상승 가능성을 과소평가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한은은 7월 수정 경제전망을 발표할 때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하반기 들어 낮아질 것으로 봤다. 하지만 현실은 7월 4.7%, 8월 5.3% 등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다.
불과 며칠 전까지 한은 및 정부 관계자들이 지난해 높은 9월 물가에 따른 ‘기저효과’ 운운하면서 이달 3%대 물가상승률이 가능할 것처럼 얘기했지만 결국 김 총재의 이날 발언으로 사실상 물거품 됐다. 민간연구소 등이 하반기 들어 일제히 물가전망을 상향 조정해도 나홀로 4% 물가를 고집하기도 했다.
국민들로서는 한은 전망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을 들게 만든 행보였다. 한은은 물가 중심선(3.0%)을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함으로써 인플레 기대심리의 안정을 도모한다고 표방하고 있다. 물가의 축이 3.0%라는 의미로 온갖 악재를 가정해도 +1.0%를 넘지 않아야 한다. 4.0%를 넘는다는 것은 명백한 한은의 정책 실패다.
◇계속 이어지는 악재…내년이 더 걱정=물가관리를 등한시하던 상황에서 외부악재는 갈수록 커져갔다. 8월 이후 미국 및 유럽의 재정위기가 불거졌고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급감하는 등 국내 수출도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한화증권 최석원 리서치센터장은 “금융위기를 빠르게 극복하기 시작한 2009년 말부터 금리를 차근차근 올렸더라면 최근의 외부악재에 대응할 여지가 많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은의 금리실기는 앞으로가 더 문제다, 김 총재가 언급한 대로 미국과 유럽의 위기는 하루아침에 끝날 상황이 아니다. 여기에다 유가와 농축수산물을 제외한 근원 인플레이션이 지난달 4.0%를 찍은 데 이어 내년 초까지 상승곡선을 그릴 것으로 전망돼 물가 잡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가계부채 급증 역시 금리정상화가 지연되는 바람에 대출이 증가한 점이 단초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한은이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일부에서는 ‘한은의 금리실기→물가·내수·실물경기 악화→금리실기’라는 악순환이 내년에 본격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