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상온] 국방개혁 할 건가, 말 건가
입력 2011-09-08 17:49
오세훈, 곽노현, 안철수. 2011년 8월과 9월 이 세 사람이 온 국민의 이목을 잡아끌었다. 정치권은 다가올 정치판의 엄청난 지각변동 예감에 크게 술렁였다. 덕분에 중요한 이슈 하나가 실종됐다. 당초 8월 임시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처리될 것으로 기대됐던 국방개혁이다.
국방개혁법안은 현재 국방위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돼 있으나 지난달 25일 예정됐던 소위는 심사는커녕 정원 미달로 열리지도 못했다. 한나라당은 할 수 없이 지난 1일 시작된 18대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중점 법안의 하나로 국방개혁법안을 올려 놓았다. 그리고 국회 국방위원인 유승민 최고위원은 11월쯤 국방위 의원들이 당론과 무관하게 자유투표(cross voting)를 통해 법안을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정기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흐지부지된 과거 전철 밟나
국정감사에다 10·26 재보선과 내년도 예산안도 있고, 한·미 FTA 비준안 처리 등 여야가 머리 터지게 싸워야 할 굵직한 사안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야당의 딴지도 여전하다. 민주당의 신학용 법안심사소위 위원장은 6일 열린 국방위 전체 회의에서 “이번 국회에서 국방개혁법안이 심사되게 해달라”는 한나라당 원유철 국방위원장의 주문에 “중대한 사업인 만큼 빨리 처리할 이유가 없다”고 짐짓 딴전을 부렸다.
자칫하다가는 국방개혁이 내년 총선 이후로 미뤄질 수도 있고, 어쩌면 과거 추진되다가 흐지부지됐던 국방개혁안들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르는 판이다. 언필칭 ‘중대한 사업’이라면서 찬밥도 이런 찬밥 신세가 없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태가 난 지 얼마나 됐다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점이 얼마나 남았다고 누구랄 것 없이 목청 높여 주장하던 국방개혁이 이토록 관심 밖으로 밀려났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물론 상부지휘구조 개편을 둘러싼 이견은 그간 여러 차례의 설명회와 토론회 등을 거쳤음에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군이 전투임무 위주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합참의장과 각 군 참모총장에게 각각 일정 부분의 군정권(인사, 군수)과 군령권(작전)을 주어야 한다는 개편안을 놓고 국방부는 찬성률이 77.6%를 기록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들어 이제는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소수일망정 개편안을 ‘군인 한 사람에게 군정·군령권을 주고 3군 총장을 부하로 두는 통합군사령부를 만드는’ 것으로 보고 반대하는 이들은 여전히 있다.
또 검증이 필요하다는 일부 주장에 따라 지난달 실시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 연합훈련에 상부지휘구조 개편안을 적용한 결과를 놓고도 ‘아전인수’ 논란이 일었다. 즉 국방부는 시험 결과 ‘각 군 총장의 군정·군령 동시 임무수행이 가능함을 확인했으며 작전 지휘의 효율성이 평균 10.2% 상승했다’고 밝힌 반면 주로 야당 소속 국방위 의원들은 분석이 부적절하다는 등 엉터리 시험운용이라고 반박했다.
더 이상 시간 허비 말아야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이견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도발 위협에 맞서 시급히 3군의 합동성을 강화하는 한편 행정조직화한 군을 전투 중심의 군으로 만든다는 국방개혁 자체의 당위성에는 아무도 이견을 제기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국회는 국방개혁을 여야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자꾸 시간만 허비할 일이 아니다. 일단 ‘싸워서 이기는 군대를 만든다’는 국방부의 국방개혁 취지를 수용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국방개혁법안을 처리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 지적된 것과 같은 잘못이 확인되면 수정 보완하면 된다. 일단 입법화된 것을 다시 고치려면 쉽지 않겠지만 고칠 수는 있다. 현 지휘구조도 1990년 ‘818계획’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것 아닌가.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