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9월 9일] 그리스도인의 사랑
입력 2011-09-08 17:38
찬송 :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218장(통 369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5:43~48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도 그리스도인과 마찬가지로 ‘사랑’이란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하지만 같은 사랑이란 단어를 써도 그 내용은 무척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아가페’라고 말합니다. 이 사랑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그와 같은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가페의 사랑이 어떤 사랑입니까?
첫째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43, 44절). 이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원래적 의미의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원수 사랑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 성령께서 충만하셔서 나를 주관하실 때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사실 사랑하면 원수는 이미 원수가 아닌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링컨에게 “원수는 없애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했더니 링컨이 웃으면서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원수를 친구로 만들어 없애버립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원수를 친구로 바꾸는 작업을 실천할 때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45∼47절). 사랑에는 소극적 사랑과 적극적 사랑이 있습니다. 소극적 사랑은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응답적 사랑이요, 나의 형제이니까, 혹 부모이니까 어쩔 수 없어 하는 주어진 사랑입니다. 반면 적극적인 사랑은 찾아가는 사랑이요, ‘∼임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입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일 수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사랑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룩됩니다. 가정은 사랑의 연습장이요, 교회는 사랑의 훈련소이기에 적극적인 사랑을 배우고 펼쳐야 합니다. 지금도 나의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적극적인 사랑을 베풀 때 이 사회는 좋은 사회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셋째는 온전한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48절). 온전이란 말은 흠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하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입니다. 마냥 베푸는 것입니다. 계산적인 베풂은 서로를 피곤하게 만듭니다. 그러기에 아가페의 사랑은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상대방을 생각하고 배려하면서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온전한 사랑은 성숙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또한 이 사랑은 지정의(知情意)의 온전한 인격을 갖추려고 할 때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하게 되면 자신이 허비되는 게 아닙니다. 결국 자기 자신에게도 진정한 마음의 평강을 가져다줍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내가 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기에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가페의 사랑을 할 수 있는 선결조건입니다.
기도 : 사랑의 하나님,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하면서도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알지도, 또 행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어 아가페의 사랑을 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장경덕 목사(분당 가나안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