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마음에는 원이로되
입력 2011-09-08 17:36
마태복음 26:36∼46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잠시 후 맞닥뜨릴 십자가 고난을 바라보시며, 고통을 절감하고 계십니다. 자신의 메시아적 사명은 너무나 분명했지만, 육신을 입으신 몸은 깊은 번민과 고통을 가져왔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갈등을 이기고 예수님은 마침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맺고 있던 신실한 언약 관계가 그와 같은 능력을 부여해 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인간들이 겪는 연약함과 고통을 맛보시고 알고 계셨다는 사실에 우리는 큰 위로를 얻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기도의 능력에 힘입어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항상 기도에 힘써야 할 신앙의 기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록 고난과 죽음이지만 예수님은 거기에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메시아 되심도 동시에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고통하고 번민하는 갈등 구조 속에서 오직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았듯이 우리의 연약한 육신을 승리로 이끄는 비결은 주님을 바라보는 신앙입니다. 하지만 본문의 제자들은 주님을 바라보지도 못했고, ‘기도하라’는 주님의 부탁에 순종하지도 못했습니다. 제자들의 연약한 모습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아는 것과 믿는 것이 따로 노는 이원화된 우리의 신앙 상태를 돌아봐야 합니다. 주님은 늘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나를 믿느냐?’ 과연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목회를 하다 보면 나 자신과 성도들의 연약한 모습을 수없이 발견하게 됩니다. 마음과 생각으로는 승리하고 싶고 축복받아 멋진 신앙인으로 헌신하고 싶지만, 말과 행동은 거기에 따라주지 않습니다. 늘 삶 속에 셀리의 법칙이 적용되어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지만 정작 말과 행동은 머피의 법칙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기대하고, 축복을 기대하는 만큼 말과 행동도 거기에 따라가 줘야 합니다. 마음과 육신이 함께 행동해야만 변화는 일어나게 됩니다.
지금 한국교회와 목회자, 신앙인들은 큰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왜 이토록 문제이며 아픔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입니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머릿속으로만 잘 믿고 아는 데 그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알고 바로 믿는다면 우리의 언어, 우리의 행동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무는 열매를 보고 판별합니다. 남을 판단하기 전에 나 자신의 신앙을 진정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과연 어떤 열매를 맺는 신앙인가? 반석위에 집을 짓고 있는가, 아니면 금방이라도 무너지고 말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는가? 알곡인가 가라지인가? 양인가 염소인가?’
목회자들의 고민이 있습니다. 자신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말은 늘 청산유수로 남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가르침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그 가르침대로 순종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선생 된 목회자들은 이런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화려한 영광을 누리고, 명예욕과 기득권에 사로잡혀 있고, 이 땅의 영광에 젖어 하늘의 영광을 잊어버리는 모습이 없는지 스스로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겸허히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의 연약함을 솔직히 고백해야 합니다. 목회자들의 고통과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최영호 목사 (경기도 광주 새언약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