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에 걷는 길-수원 화성 성곽길] 성곽 돌 하나, 나무 한그루에도 ‘정조의 효심’ 애틋

입력 2011-09-08 17:38


정조대왕을 필두로 한 개혁세력과 수구세력인 노론의 갈등을 다룬 이인화의 미스터리 역사소설 ‘영원한 제국’의 무대인 수원 화성(華城)은 고층빌딩을 배경으로 날카로운 창끝에서 나부끼는 각양각색의 군기(軍旗)가 20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조선시대로 여행을 떠나게 한다.

화성은 정조대왕이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 배봉산에서 명당으로 이름난 지금의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로 옮기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착공 2년 10개월만인 1796년에 완공한 성으로 성돌은 다산 정약용이 개발한 거중기(擧重機)를 이용해 운반했다.

화성은 팔달산의 지형지세를 따라 나뭇잎 모양으로 길게 뻗어 있다. 화성에는 북문인 장안문, 남문인 팔달문, 서문인 화서문, 동문인 창룡문이 있다. 그리고 각 문 사이에는 적정을 관찰하고 포를 쏘는 공심돈(전투요새), 군사를 훈련시키는 장대 등 모두 41개의 시설물이 5.7㎞의 성곽을 따라 수백 미터의 간격으로 늘어서 있다. 성곽을 한바퀴 도는데 두세 시간 걸리지만 어느 것 하나 같은 모양의 시설물이 없어 지루하지 않게 느껴진다. 화성의 정상은 서장대로 정조대왕은 생전에 이곳을 5번이나 올랐다고 한다.

재위 24년째인 49세에 등창으로 요절해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수원 화성에는 이상향을 꿈꾸던 정조대왕의 원대한 청사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건축실명제가 실시된 세계 최초의 건축물이자 계획도시인 화성의 성곽은 한국전쟁 때 부서지고 허물어져 1979년에 복원했다. 그럼에도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은 설계도인 ‘화성성역의궤’에 의해 본래 모습을 되찾았기 때문.

성안에 위치한 화성행궁은 국왕이 머물던 별궁으로 평시에는 관아로 활용되던 시설이다. 화성행궁은 총 33동 577칸의 조선 최대 행궁으로 정조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연 효행의 장소로도 유명하다. 수원을 ‘효의 도시’라고 부르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수원=김도영기자 do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