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한가위] 그 설렘의 길 孝·情·休를 만나다
입력 2011-09-08 17:29
길지 않은 추석 연휴로 인해 고향 오가는 길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탯줄 같은 고향길은 아무리 멀어도 아무리 가까워도 가슴을 설레게 한다. 비록 그 길이 기찻길이든 바닷길이든 노정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길의 끝에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어릴 적 추억이 걸음걸음마다 오롯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길은 어떤 의미일까? 길의 시작은 어디고 길의 끝은 어디일까? 태초의 길은 생존을 위해 자연의 틈서리에 반복적 발걸음으로 낸 오솔길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 욕구에서 욕망으로 증폭되면서 오솔길은 신작로로 바뀌었고 신작로는 고속도로로 진화했다. 길의 의미도 생존을 위한 활로에서 소통의 공간을 거쳐 목적지로의 빠른 이동을 위한 통로로 변질됐다.
최근 걷기 열풍에 힘입어 온갖 길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멀찍이 물러선 깊숙한 산길, 파도 소리 들으며 걷는 해변길, 지친 심신을 피톤치드로 치유하는 숲길, 역사와 문화를 찾아가는 답사길, 그리고 사람 사는 온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마을길 등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소통의 길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향으로 가는 길’ 만큼 애틋하고 정겨운 길은 없다. 안식과 소통을 뜻하는 고향길은 비록 멀고 막힐지라도 늘 가슴 설레는 첫사랑 같은 존재다. 신경림의 ‘고향길’과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처럼 주옥같은 시와 소설이 길에서 태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들의 끝에는 오늘도 애타게 자식들을 기다리는 부모들이 살고 있다. 육지 속의 섬마을로 불리는 영주 무섬마을의 장두진 할머니(84)도 그런 사람이다. 스무살에 꽃가마타고 외나무다리를 건너 무섬마을로 시집온 지 어언 60여 년. 8남매에 손자손녀가 14명인 할머니는 벌써부터 골목길에 나와 강 건너 찻길을 버릇처럼 응시하고 있다. 육지와 마을을 이어주는 번듯한 다리가 생겼지만 비만 오면 떠내려가 발을 동동 구르던 외나무다리 시절의 노파심 때문이리라.
추석 연휴를 맞아 가족과 함께 고향 오가는 길에 하찮아 보이는 풀 한 포기와 돌부리 하나에도 정겨운 표정이 담겨있는 인근의 전통마을을 찾아 쉬엄쉬엄 걸어보자. 느림의 미학이 지배하는 그 길에서 한동안 잊고 살았던 효(孝)와 정(情), 그리고 휴(休)의 의미를 만나게 될 것이다.
안동 퇴계오솔길에 위치한 농암종택의 애일당은 고희를 맞은 농암 이현보가 때때옷을 입고 노부모와 마을 어른들 앞에서 재롱을 부렸던 곳이다. 수원 화성의 성곽길에는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대왕의 효심이 절절이 묻어나고, 효도마을로 불리는 아산 외암민속마을의 골목길을 배회하다 보면 효(孝)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정지용 시인의 생가가 위치한 옥천에는 차마 꿈에도 잊지 못하는 고향의 정(情)이 실개천처럼 흐르고, 초가집 280여 채가 옹기종기 처마를 맞댄 순천 낙안읍성민속마을에서는 이웃사촌들이 수백 년째 골목을 사이에 두고 정을 나누고 있다. 휴전선 너머로 두고 온 고향땅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고성 통일전망대에 오르면 나누지 못하는 혈육의 정에 가슴이 미어진다.
제주도의 원형질이 온전하게 보존된 성읍민속마을과 500여 채가 넘은 한옥이 밀집한 전주 한옥마을, 그리고 돌담길이 아름다운 산청 남사예담촌의 고택은 하룻밤 휴(休)를 통해 지친 심신을 재충전하기에 좋다.
글·사진=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