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긴 어딜 가노, 고향언덕에 집짓고 여생 보낼끼다”… 댐 수몰 예정 영주 금광리 팔순 할아버지의 추석

입력 2011-09-07 21:31


경북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주민들은 고향마을에서 지내는 마지막 추석을 차분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평은면과 인근 이산면은 2014년 물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저수용량 1억8100만t인 영주댐이 2014년 준공되기 때문이다. 담수가 2013년 6월 시작되므로 이주는 그 전에 마무리된다.

금광리에서 평생 농사를 지은 장도생(83) 할아버지는 7일 추석에 찾아올 세 아들 내외와 손자·손녀들을 위해 집안 정리에 여념이 없었다. 2년 전 아내와 사별한 장 할아버지는 마루, 방, 마당을 부지런히 오가며 구석구석 손질했다. 며느리들이 도착하면 음식도 어느 해보다 푸짐하게 차려 이웃과 함께 나눠 먹을 생각이라고 했다.

자식들을 기다리는 설렘 속에서도 고향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슬픔이 얼굴에 묻어 나왔다. 금광리에서는 지난해 50여 가구가 이미 이사를 갔고 현재 500여 가구가 남아 있다. 이들 대부분은 내년 인근 이주단지나 자식들이 나가 있는 타지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그러나 장 할아버지는 고향을 잊지 못해 근처에 터를 잡을 계획이다. 그는 댐 저수지가 보이는 언덕에 집을 짓고 여생을 보낼 것이라고 했다. 부산과 거제도에 있는 아들집으로 가도 되지만 300여년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도저히 떠날 용기가 나지 않아서다. 장 할아버지는 “그나마 고향 부근에 있어야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세상의 전부였던 금광리는 이제 추억의 대상으로 변해 가고 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인들은 고향 마을에 대한 추억 보따리를 풀며 서로를 위로했다.

금광리는 6·25 전쟁 격전지였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포탄이나 탄약이 제대로 수거되지 않았다고 한다. 장 할아버지는 “어렸을 때 아이들이 모이면 근처 평은저수지에서 멱을 감고, 바위에서 뛰어내리며 담력도 자랑하고 그러다가 배고파지면 화약 터뜨려 물고기도 잡아먹었다”고 회상했다.

사과과수원을 하는 장성하(65)씨는 “가을운동회 때 학교 꾸민다고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들국화를 꺾어 교문도 장식하고, 수박이나 사과 서리도 했다”라며 거들었다.

매년 가을에는 낙동강 지류 내성천이 휘감아 돌며 만든 모래밭에서 마을 대항 운동회가 열려 웃음꽃이 피었다. 김두원(81) 할머니는 “15세에 이곳으로 시집와 66년 동안 고생한 기억밖에 없다”면서도 “모래밭도 그렇고 요즘에는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도 예사롭지 않다”고 했다.

마을 노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더 있다. 댐 건설을 둘러싼 보상 문제로 주민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고, 마을이 물에 잠기면서 평생 얼굴을 맞댄 가족 같은 사람들과 화해할 기회마저 함께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금광리 노인회장 김찬동(76)씨는 “철들고 나서 마을에서 어르신 150여명이 돌아가시는 것 지켜봤는데 하나같이 마을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며 서로 도왔다”며 “보상 문제로 서먹해져 마을을 떠날 때 작별인사도 안 한 사람도 있다”고 했다. 김씨는 “수십 년 가족처럼 살아온 사람들을 댐이 갈라놓은 것 같아 야속하다”고 씁쓸해했다.

영주=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