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그후 10년, 평화는 없었다-(2) 미국이 얻은 것과 잃은 것] 심각한 ‘테러 트라우마’
입력 2011-09-07 18:06
9·11테러 이후 미국이 얻은 것은 없다. 테러를 주모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지만 미국인들이 잃은 것이 너무 크다. 미국인들은 여전히 테러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 최고’ 자부심을 잃다=씽크탱크 아스펜 연구소와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난 6월 설문조사한 결과 미국인 68%는 9·11테러 발생 전인 10년 전보다 지금 미국이 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47%는 최근 10년이 미국의 지난 100년 역사 가운데 최악의 기간이라고 생각했고, 52%는 아이들이 겪을 미래의 미국은 더욱 나빠질 것이라고 하는 등 우울한 답변이 줄을 이었다.
9·11테러 이후 평화와 번영을 최고의 가치로 지니고 있던 미국인들에게 분쟁과 충돌이 일상이 됐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9·11테러 이전에는 평화가 일상이고 전쟁이 일탈이었지만 이제는 반대가 됐다는 것이다. 안으로는 꾸준히 테러 위협에 시달리고 있고 밖으로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진행 중이다.
국방부는 최근 보고서에서 “극단적인 종교 이념, 신기술, 저렴하고 강력한 무기 등이 세계를 끊임없는 분쟁으로 몰아넣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선진국이 빨리 승리할 것이라는 환상을 가져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테러의 ‘외상’은 어느 정도 아물었지만 후유증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뉴욕타임스(NYT)는 뉴욕시 3개의 9·11테러 건강 프로그램 자료를 분석한 결과 테러가 발생했던 월드트레이드센터(WTC)에 있었던 1만명가량의 소방관, 경찰, 시민 등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우울증 등을 겪었으며 상당수는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환자가 늘어난다.
툴레인 대학 찰스 피글리 교수는 “장애를 일으킨 기억은 우리가 매일 살면서 보는 곳에서 떠오른다”며 “전장에서는 떠날 수 있어도 집을 떠날 순 없다”고 말했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지난 2일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36%는 자신이 테러에 희생될 수 있다고 두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샐러드 볼’이 사라졌다=다양한 인종이 미국적인 가치 아래 하나로 뭉쳐 있는 모습은 미국인들에게 큰 자부심이었다. 학자들은 고유의 재료가 자기 맛을 잃지 않으면서 하나의 요리가 되는 샐러드에 비유해 이런 미국의 모습을 ‘샐러드 볼(salad bowl)’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하지만 9·11테러 이후 이런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특히 미국 내 무슬림에 대한 적개심과 반감은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갤럽 아부다비 지부가 지난 8월 발표한 조사 결과 미국 내 무슬림 48%가 인종·종교적 차별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독교를 비롯한 타 종교는 20% 안팎이었음을 감안하면 무슬림이 피부로 느끼는 차별이 높다는 걸 보여 준다. ‘무슬림이 테러에 반대한다는 발언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는 무슬림 28%가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은 60% 이상이 ‘그렇다’라고 답했다.
최근에는 한 어린이용 색칠 교재에 오사마 빈 라덴이 네이비씰에 사살되기 전 무슬림 복장의 여성을 인질로 삼는 모습이 실려 무슬림의 분노를 촉발하기도 했다. 미-이슬람 관계협의회(CAIR) 미시간 지부 다우드 왈리드 대표는 “아이들은 희망 대신 증오심만 키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