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불면 무섭죠" 서울역 노숙자 르포

입력 2011-09-07 19:12


[미션라이프] 서울역에서 지낸지 14년째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았다. 몇 달씩 밀린 월급을 손에 쥐어보지도 못하고 직장을 잃었다. 아내가 먼저 집을 떠났다. 초등학생이던 딸을 부모님께 맡기고 경북 구미에서 무작정 상경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서울역에서 잠자리를 청했던 게 시작이었다. 정모(54)씨는 이제 서울역을 떠나는 것이 두렵다.

7일 오후 서울역. 정씨는 노숙인치고는 말끔한 차림이었다. 그는 “노숙인이라고 다 술에 취해 사는 것은 아니다”며 “가끔 공사판에서 일도 하고, 이 생활을 청산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는데 막상 해보려면 잘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가끔 쉼터나 1일 이용시설을 찾아 몸을 씻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추석을 앞둬 집생각이 간절하나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지난달부터 한국철도공사 코레일이 서울역 노숙인 퇴거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정씨는 서울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쉼터도 기웃거려 보지만 서울역 근처 길바닥에서 자는 것이 마음 편하다. 아직은 지낼 만 하다고 말하는 정씨의 얼굴에 그러나 수심이 가득하다. 그는 “당장 올 겨울이 정말 막막하다”며 “서울역에서 자유롭게 지내는 것이 편하다보니 다른 곳으로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서울역의 노숙인 퇴거 조치 이후 한낮에 서울역 주변을 서성이는 노숙인은 기존의 250~300명에서 200~250명 가량으로 줄었다. 노숙인 지원 단체들은 40~50명 정도가 서울역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고, 일부는 새로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역 노숙인 퇴거 조치 이후 서울시가 응급구호방, 쪽방 등 동절기 때 마련하던 노숙인 지원 프로그램을 보다 일찍 시작했다. 당장 노숙인들의 생존 문제가 눈에 띄지는 않는 이유다. 추위가 시작되는 가을부터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추위가 닥치면 갈 곳 잃은 노숙인들은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노숙인들을 돕고 있는 ‘다시서기센터’ 소장인 여재훈 성공회 신부는 “서울역에서 지내는 노숙인들은 소란을 일으키는 사람들보다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서 자신의 몸을 보호하려는 생각에 서울역을 찾는 것인데 잠잘 곳이 여의치 않으니 겨울이 되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숙인 복지 전문가들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국민일보가 함께 펼치는 ‘홈리스와 손잡기’ 캠페인이 노숙인 문제에 대안을 제시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NCCK와 국민일보는 한국교회들이 노숙인 복지영역에 큰 관심을 갖고 적극 참여해줄 것을 기대하며 캠페인을 시작했다. 특히 인적, 물적 자원이 풍부한 중·대형교회들이 직·간접적으로 노숙인을 지원한다면 좀더 안정적인 형태로 노숙인의 자립·자활을 이끌어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여 신부는 “노숙 분야 활동가들끼리 이야기를 나눠보니 NCCK와 국민일보의 캠페인에 상당히 고무된 분위기”라며 “캠페인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노숙인과 교회가 결연을 맺으면 교회의 의료 또는 직업 재활 인프라를 제공받을 수 있어 노숙인 자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NCCK 홈리스대책위 이석병 목사는 “국민일보와 함께 전개하는 한 교회가 노숙인 한 명을 돌보는 ‘1대1 결연 사업’은 희망의 출발”이라며 “사회적 약자를 부축하고 살리는 이 캠페인에 한국교회와 많은 크리스천들이 함께 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캠페인 관련 후원계좌는 신한은행 100-027-286698(한국기독교연합사업), 문의는 NCCK 홈리스대책위원회(070-7707-8437)로 하면 된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