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 겉과 속] 영국에선 기자출신 여성이 의원수당 정보공개 4년 투쟁
입력 2011-09-07 18:16
국민일보, 18대 국회의원 사용내역 최초 분석·공개
의회민주주의의 모범으로 꼽히는 영국 의회도 주택수당 제도를 둘러싼 논란으로 한동안 홍역을 앓았다. 주택수당이 의원들의 쌈짓돈으로 쓰인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와 정보공개를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주택수당 제도는 영국 의원들에게 관사에 해당하는 제2주택에 대한 비용을 지원하는 것. 지역구가 런던에서 떨어져 있는 의원들이 의회활동을 위해 런던에 체류해야 하는 상황을 감안,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제도다. 지역구의 집과 런던의 주택 가운데 한 곳을 정해 집세와 모기지론 이자, 공공요금 등을 연간 2만4000여 파운드(약 4100만원) 한도 내에서 청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문제는 공개된 주택수당 청구 내역을 유권자들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는 점. 부부 의원이 자신의 본가와 런던 주택에 대해 이중으로 수당을 청구하기도 하고, 한 해 동안 3번이나 이사를 다니며 그때마다 가구 비용을 청구한 의원도 있었다. 일부 의원들은 주택의 수영장 청소비를 비롯해 전구·보일러 교체비, 정원관리비뿐 아니라 애완견 사료비까지 챙겨간 것으로 나타났다. 거울과 화장실 솔, 카펫을 구입하는 데에도 수당을 청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영국 유권자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결국 이 여파로 2009년 영국의 하원의장이 314년 만에 의장직에서 중도 사퇴했고, 20여명의 의원과 각료가 사퇴하거나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영국 정계를 뒤흔든 파문의 시작은 한 시민의 정보공개 청구였다. 기자 출신의 미국인 여성 헤더 브룩(41)이 주인공이다.
미국에서 정보공개를 통해 의원들의 지출내역을 파헤친 경험을 갖고 있던 브룩은 1997년 영국으로 건너왔다. 주택수당 등을 아무 거리낌 없이 청구하는 영국 정치인들의 모습에 놀란 브룩은 2004년 의원들의 수당 내역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청했다. 몇 년간 정보공개를 요청했지만 의회는 묵살했다. 그러나 브룩은 물러서지 않았다.
몇몇 언론이 동조하며 정보공개 요청에 합류했고, 마침내 영국의 정보 관련 기관과 법원은 2008년 의원들의 비용청구 영수증 공개를 명령했다. 이듬해 가디언 등 언론이 앞다퉈 의원들의 수당 청구 내역을 입수해 보도한 데 이어 의회가 의원들의 비용청구 내역을 공개하면서 영국 유권자들은 분노에 휩싸였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선거관리위원회는 정치활동을 위해 국회의원이 숙소를 임대해 사용할 경우 그 비용을 정치자금으로 지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도 아무런 제한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탐사기획팀(indepth@kmib.co.kr)
정승훈 차장(shjung@kmib.co.kr) 김지방 차장(fattykim@kmib.co.kr) 정동권 기자(danch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