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설봉호 기적은 우연히 오지 않았다

입력 2011-09-07 17:51

6일 새벽 전남 여수시 백도 해상에서 발생한 여객선 설봉호 화재에도 불구하고 승객과 승무원 130명 전원이 사상자 없이 기적적으로 해경·해군 함정에 무사히 구조됐다. 지난 1993년 전북 부안 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서해 페리호 침몰로 292명이 사망한 사건과 1970년 12월 제주-부산 정기여객선 남영호가 거제도 앞바다에서 침몰, 승객과 승무원 362명이 사망한 사건이 아직도 생생하다.

통상적으로 여객선 화재사고는 많은 인명피해를 수반한다. 더욱이 이른 새벽시간 망망대해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는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설봉호 승객들은 전원 무사했다. 설봉호 기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해경과 해군의 신속한 기동과 적절한 대응조치, 설봉호 승무원들의 차분한 현장 조치, 그리고 승객들의 희생정신과 질서의식이 어우러져서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우선 거문도 해상에서 경비근무 중이던 300t급 해경 함정 317함이 신고를 받고 현장에 30여분 만에 도착한 것을 시작으로 해군과 해경이 기동성 있게 구난구조에 참여했기 때문에 기적은 가능했다. 317함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설봉호 선미가 화염에 싸였고 승객들은 캄캄한 밤바다에 뛰어든 상태였다. 출동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설봉호 승무원들의 프로다운 현장 조치도 돋보인다. 통상 화재나 침몰이 발생할 때 승무원들은 우왕좌왕하기 쉬우나 이들은 일일이 선실을 돌아다니며 조용한 목소리로 대피할 것을 알렸다고 한다. 긴급 상황에서 승객들의 동요를 막기 위한 직업정신의 발로다. 또한 승객 전원이 신속하게 구명동의를 착용하게 한 것도 참사를 막는 데 기여를 했다.

승객들의 질서의식이 기적을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들은 동요하지 않고 노약자와 어린이부터 구명정에 태웠다. 젊은 승객들은 마지막 순간에 바다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나만 살겠다고 내 가족을 먼저 살리겠다고 나섰다면 혼란 속에 큰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기적은 우연히 오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선상 화재 사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