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이창호의 ‘부득탐승’ 아직 끝나지 않은 승부
입력 2011-09-07 17:46
부득탐승(不得貪勝). 승리를 탐하면 얻을 수 없다는 말로 바둑을 둘 때 명심해야 할 위기십결(圍棋十訣)의 첫 번째 구절이다. 1975년 전주에서 태어나 조부로부터 바둑을 배워 11세인 1986년에 프로가 된 천재기사 이창호. 그는 조훈현 9단의 유일한 제자로 스승을 넘어 20여년 가까이 세계 최강자로 군림해왔다. 바둑을 모르는 사람도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중국에서는 신적인 대우를 받는다. 그렇게 30여 년 외길 인생을 걸어온 이창호 9단이 자전 에세이집을 발간했다.
책에는 바둑을 처음 접한 시기부터 조훈현 9단과의 사제 인연, 세계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전성기와 22년 만에 무관이 되며 겪어야 했던 슬럼프 등 이창호의 36년 인생과 바둑을 통해 깨달은 삶의 철학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이창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많은 것들이 알려져 있지만, 그동안 보아왔던 모습과는 달리 조금 더 진솔한 이창호를 만나볼 수 있다.
지난 9월3일에 출판 기념 사인회가 열렸다. 이창호 9단을 직접 만나보기 위해 구미, 강릉, 안동 등 전국에서 200여 명이 몰려왔다. 연령층도 다양했다. 어린아이부터 지긋한 연배의 할아버지, 유모차를 끌고 온 주부, 대학생 등 이창호 9단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 9단은 몇 해 전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고, 22년 만에 무관으로 전락하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에 프로를 지망했던 연구생 출신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면서 안정을 얻었다. 승부의 아픔을 아는 아내이기에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하고 배려해 줄 수 있었다. 지독하게 외롭고 처절한 승부를 해야 했던 그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것이다. 최근에는 ‘아내 바보’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더 없이 행복하다. 얼마 전에는 아이도 생겼다.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다”며 해맑은 웃음을 짓는 이창호 9단은 아마도 지금이 세계 최고가 되었던 순간보다 더 행복한 것 같다.
돌부처, 느림의 미학, 신산으로 불리던 이창호 9단이 최근에는 계산이 잘되지 않아 역전패를 많이 당한다. 그 때문인지 기풍도 예전과는 달리 전투형으로 바뀌었다. 성적 또한 예전 같지 않다. 이창호 9단이 약해졌다기 보다 환경이 변하면서 다른 기사들이 너무 강해졌다. 하지만 이창호 9단은 “나는 결코 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나는 승부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이창호 9단에게 지금까지는 전초전에 불과하다. 또 다시 그는 새로운 승부를 그려갈 것이다. 지금의 이창호가 아닌 새로운 이창호로 그의 승부는 계속될 것이다.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