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음악 이야기] 美 교회음악으로 꽃 피운 흑인영가
입력 2011-09-07 18:03
남북전쟁 후 구체화돼 나타난 민요 형식을 블루스라고 한다. 수세기에 걸친 흑인들의 쓰라린 체험이 이 장르를 만들었다. 블루스는 대부분 악보를 읽지 못하는 연주인에 의해 창조됐는데, 그들은 주로 입과 귀를 통한 감각적인 음악을 습득했다. 열망, 욕구불만, 희망, 좌절을 표현한 그들의 음악에는 아프리카 고향에 두고 온 부모형제에 대한 그리움과 정신적·육체적으로 노예라는 신분이 주는 설움과 고달픔이 담겨 있다.
하나님에게 자신들의 애환을 호소하는 듯한 선율. 자유와 고난의 환경에서, 해방에 대한 절규에 가까운 열망으로 미국의 교회음악에 접목됐다.
흑인노예들은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백인의 문화인 찬송가, 유럽 전통음악과 친숙해지게 되었다. 그러한 일련의 문화변용 과정을 거쳐 나타난 것이 ‘아프리카계 미국(Afro-American)’ 음악 양식이다.
흑인영가는 19세기 초부터 발생했다. 이 시기에 가장 많은 활동을 한 단체로는 테네시주 내슈빌에 있는 흑인대학 피스크대학의 ‘피스크 주빌리 싱어즈’가 있다. 그들은 흑인영가라는 한 장르를 정착시켰고 미국 교회음악에 큰 영향을 줬다.
한편 18세기 초 미국에는 대각성운동이라고 불리는 종교부흥운동이 일어났다. 침례교 신자들과 더불어 천막집회운동이 벌어졌고, 찬송가 또한 민요찬송가와 종교발라드가 사용됐다. 이러한 천막 집회에는 백인과 흑인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흑인들이 부를 영가의 기본적인 선율적 소재나 가사가 백인영가로부터 상당 부분 발췌하게 된 것이다. 천막집회 영가에서는 민요찬송가 혹은 종교발라드의 가사를 한 행씩 끊어내고, 그 사이 사이에 가사 한 줄 혹은 두 줄 정도의 후렴구를 삽입했다. 경우에 따라 신도들이 즉흥적으로 후렴구의 단순한 선율을 화답하기도 했는데, 이는 찬양을 더욱 뜨겁게 달구어주었다. 이는 영가가 복음 설교자와 회중 사이에 부름-응답의 형식으로 불린 것을 말해준다.
연합기도회 형태로 나타난 대각성운동으로 복음적인 찬송이 많이 불렸고, 1870년 초 미국 드와이트 무디(1837∼1899) 목사가 그의 찬양 동역자인 아이라 생키와 함께 부흥집회를 수없이 같이 다녔다. 또한 YMCA 지도자였던 무디는 1870년 생키와 함께 전도단을 만들어 대중에게 맞는 복음찬송을 만들게 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복음찬송을 작곡한 사람은 시각장애인 작가 크로스비이며, 8000여편을 작사했다. 그는 의사의 실수로 생후 6개월 만에 장애인이 되었지만 결코 원망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의 영혼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시길”이라며 축복해 주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지 않고는 단 하나의 찬송가도 작시하지 않았다. 우리 찬송가에도 그녀의 작품 20여편이 들어 있다. 그 가운데 391편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는 매우 아름다운 성시로 유명하다.
다른 한 곡을 소개하자면 세계적 히트곡으로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가 있다. 이 곡은 국경과 종교를 초월해 이 세상에서 가장 널리 불리는 노래 중 하나다. 이 곡은 260여년 전 노예선 선장이자 노예상인 존 뉴턴에 관한 내용이다. 풍랑 가운데서 살려주신 하나님께 회개하고 목사가 된 그가 과거에 방탕하고 부도덕한 노예 상인이었던 죄인인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고 찬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이 곡은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자를 치료하는 재활원, 교도소에서 치료와 교화 목적으로 환자, 재소자들에게 불림으로써 찬양의 감동과 치유로 이어지고 있다.
김기원(관동대 음악학부 교수, (사)기원오페라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