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성가대 인생의 노(老) 권사, 제2의 황금기 맞다

입력 2011-09-07 15:49


[미션라이프] “TV 나가고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요. 팔십 먹은 노인이 나와서 더욱 관심 있게 본다고 해요. 우리 이성희 목사님은 노래를 잘한다며 저를 종달새 할머니라고 불러요. 음정 박자가 정확해 좋으니 열심히 하라고 하시던데요. 호호.”

84세의 노(老) 권사가 입을 가리고 수줍게 웃었다. 단원 평균연령 62.3세의 KBS TV 프로그램 ‘청춘합창단’에서 청명한 목소리로 큰 감동을 주고 있는 최고령 멤버 노강진 권사(서울 연동교회)는 소녀 같았다.

1928년생이다. “정정하십니다.” “그럼요. 노래가 있으니까요. 찬양을 많이 하면 안 늙어요. 세상의 어려움도 초월할 수 있고 마음의 천국을 누리죠. 서울 청담동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1호선 종로5가역까지 온 다음 교회까지 걸어 왔어요. 자가용은 원래 안타요.”

그는 “요즘 제2의 황금기를 맞고 있다”고 했다. 모두 작은아들 덕택이다. “지난 7월 초였어요. 하루는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어요. 합창단 오디션에 신청서를 낸 게 맞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 적 없다고 하는 데 또 전화가 와요. 진짜 신청 한 적 없냐고요.” 48세 된 둘째 아들이 어머니 몰래 일을 쳤다. 노래를 사랑하는 모친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단다.

그렇게 7월24일 오디션장으로 향했다. 2500명 지원자 중 1차로 200명을 뽑고 거기서 다시 40명을 선발하는 것이었다. 노래는 아일랜드 민요. 40년 전부터 합창단 생활을 하며 수백 번 불렀던 18번이었다.

“많이 떨리셨겠습니다.” “떨리긴요. 하나도 안 떨렸어요. 일평생 음악 속에 살았어요. 합창단을 하면서 수도 없이 불렀던 노래인걸요. 근데 합격자 모임에 갔는데 제가 최고령이라는 사실을 안 다음부터 그때부터 떨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런 일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이지 나 혼자 힘으로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어요?”

그는 강원도 이천 출신이다. 이북에서 다니던 감리교회에서 18세부터 성가대를 섰다. 22세 되던 50년 결혼했다. 6·25전쟁이 터지면서 군인인 남편과 남쪽으로 내려왔다. 세종대의 전신인 서울여자 가정교육사범학교에서 보육학을 전공했다. 세 아이를 낳았다. 육군 경리장교를 하던 남편이 군복을 벗고 공무원이 됐다. 이북에서 감리교인이었지만 36세 때인 64년 서울 명륜동에 정착하면서 연동교회에 잠깐 들렀다가 김형태 목사의 설교에 반했다. 성가대석으로 향한 것은 물론이다.

40대엔 YWCA 합창단과 운경합창단 생활을 했다. 한국 교회음악의 대부인 나운영(1922~93) 선생 밑에서 노래를 배웠다. 음악을 향한 그의 열정은 52세에 다시 기독음대 성악과로 이끌었다. 장신대 평신도 지도자과정을 다니며 성가대 활동을 했다. 예장 통합 서울노회 연합성가대 합창단 활동도 했다. 78세까지 성가대를 섰으니 자그마치 60년 성가대 인생이다. 제일 좋아하는 찬송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성가대 곡이 나오면 웬만한 것은 눈 감고도 부른다.

“노래가 그렇게 좋았어요. 그때부터 1부 성가대와 3부 성가대, 여전도회 성가대를 맡았죠. 합창단원으로 미국 뉴질랜드 이집트 러시아 등 전 세계를 돌며 발표회를 가졌습니다.”

노래 때문에 즐거운 인생이지만 두 가지 미안함과 아쉬움이 있다. 하나는 수십년 째 남편과 자신을 뒷바라지 하고 있는 장남과 며느리에 대한 미안함, 둘째는 87세의 고령에도 여전히 교회를 가까이하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아쉬움이다.

“우리 할아버지(남편)가 아주 완고해요. 자식과 함께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아요. 그래서 장남이 결혼한 지 29년이 되지만 아직까지 자기들끼리 살아본 적이 없어요. 요즘 그런 며느리가 없죠. 미안하죠. 남편이 교회 안나오는 게 제일 힘들고 어려워요. 그게 내 책임과 의무인데….”

마지막 그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팔십 평생 경험상 노래에 인생이 담겨요. 노래 중에 노래는 찬양이죠. 아무리 음악적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신앙이 없으면 영혼 깊은 노래를 할 수 없어요. 이런 노래를 모른다면 불행한 삶입니다.”

노 권사의 도전은 오는 24일 열리는 ‘KBS 전국민 합창대회’에서 빛을 발한다.

글·사진=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