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문 맞댄 200여채 초가 600년 속살 오롯이… 안동 하회마을에 숨겨진 ‘보물’ 4곳

입력 2011-09-07 17:37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가 600년 동안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 강마을로 한가위를 앞두고 형형색색의 꽃으로 곱게 단장을 하고 있다. 따가운 햇살은 초록색 들녘을 캔버스 삼아 황금색 물감으로 나날이 덧칠을 하고 보름달을 닮은 박은 초가지붕 위에서 나날이 몸무게를 불린다. 하나같이 정겨운 고향의 풍경들이다. 양진당과 충효당을 비롯해 하동고택, 화경당(북촌댁), 작천고택, 담연재 등 고래등 같은 고택들이 처마를 맞댄 하회마을은 수학공식처럼 잘 짜여진 마을투어 프로그램 탓에 두세 시간만 투자하면 문화재로 등록된 고택들을 대충 둘러볼 수 있다. 하지만 하회마을 안팎에 숨겨진 4개의 ‘보물’을 둘러보려면 온종일을 투자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하회마을의 첫 번째 보물은 마을 외곽에 위치한 초가집과 골목길. 낮은 토담에 둘러싸인 초가집들은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곳으로 관광객이 물밀 듯 밀려올 때도 찾는 사람이 드물어 딴세상처럼 한적하다.

토담 아래에는 채송화와 봉선화를 비롯해 맨드라미, 코스모스, 해바라기 등 온갖 가을꽃들이 소담스럽게 피어 고향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선비를 상징하는 고택의 능소화도 아름답지만 호박꽃과 나팔꽃이 초가지붕을 수놓아 더욱 정겹다.

조선시대 대학자인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고 흘러 하회(河回)라는 지명을 얻었다. 풍수지리적으로 태극형·연화부수형·행주형에 해당하는 하회마을에는 현재 기와집 160여 채와 초가집 210여 채가 담장과 골목을 사이에 두고 소고소곤 정담을 나누고 있다.

고택은 대부분 마을 중앙을 차지하고 있지만 초가집들은 하회마을의 너른 들녘과 가까운 서쪽과 남쪽에 둥지를 틀고 있다. 까치발을 하면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낮은 초가집 토담에는 갓 수확한 참깨가 줄지어 기댄 채 가을햇살을 즐기고 있다. 마당을 겸한 텃밭에는 옥수수, 고추, 가지를 비롯해 시골에서도 구경하기 쉽지 않은 아주까리, 수수, 조 등이 잘 가꿔진 고택의 정원 못지않은 미적 감각을 자랑한다.

하회마을에는 소방서와 교회도 한옥으로 지어져 있다. 특이하게도 이곳에서는 우편배달부도 두루마기 차림에 갓을 쓰고 우편물을 배달한다. 대님으로 바지가랑이를 질끈 동여매고 하얀 고무신을 신은 우편배달부가 옛날식 우편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쥘부채를 부치며 걷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미소를 머금게 한다.

하회마을의 두 번째 보물은 조선시대 유생들이 병산서원으로 공부하러 다니던 옛길. ‘하회마을길’로 불리는 이 길은 들녘을 가로질러 화산(327m)의 산허리를 넘고 다시 낙동강변을 걸어 병산서원에 이르는 4㎞의 호젓한 오솔길로 노란색 마타리를 비롯해 온갖 야생화들이 수수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겸암 류운용을 비롯해 풍산 류씨들의 무덤이 산재한 화산 중턱의 고갯마루에서 뒤를 돌아보면 하회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너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넉넉한 산길은 최근 정비를 한 덕분에 평탄하다. 나무 터널을 통과하고 골짜기를 지나면 길은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오솔길로 좁아들고 칡꽃의 은은한 향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길은 이내 낙동강변의 왕버들나무 군락을 벗한다. 이어 과수원과 낙동강변 솔밭을 지나면 배롱나무 꽃이 만발한 병산서원이 웅장하면서도 소탈한 모습으로 반긴다.

병산서원에서 하회마을 입구 삼거리까지 4㎞는 유홍준씨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극찬한 비포장도로. 자동차가 달릴 때마다 뽀얀 흙먼지가 날리는 시골길 고갯마루에 서면 드넓은 풍산들녘의 젖줄인 낙동강이 유유히 흘러 발아래 절벽을 지난다.

하회마을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는 부용대의 깎아지른 절벽 중간쯤에는 ‘층길’로 불리는 오솔길이 숨어 있다. 하회마을의 세 번째 보물로 류성룡이 친형인 류운룡과 학문을 논하고 우애를 돈독히 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차례나 오갔던 길이다. 이 길은 부용대 남쪽의 옥연정사에서 북쪽의 겸암정사까지 약 400m 외길로 지층과 지층 사이의 틈새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정도로 아찔하다.

오솔길의 출발점인 옥연정사는 류성룡이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 임진왜란 전란사인 ‘징비록(국보 제132호)’은 이곳에서 탄생했다. 겉보기엔 도저히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층길’은 옥연정사의 정문인 간죽문을 나서야만 절벽 틈에 꼭꼭 숨겨두었던 비경을 두루마리 그림처럼 펼쳐 놓는다.

하회마을과 낙동강이 산태극수태극을 그리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려면 층길 위에 위치한 부용대 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낙동강이 하회마을을 감싸고 S자로 흐르는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낙동강이 하회마을과 화천서원을 두 번이나 S자 모양으로 감싸고 흐르는 비경을 만나려면 류운용의 산소에서 가파른 산길을 500m쯤 오르는 수고를 해야 한다. 벤치가 놓여있는 개활지는 앞에 시야를 가리는 나무가 없어 하회마을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마지막 보물이자 유일한 포인트.

이곳에서 보는 하회마을과 낙동강의 풍경은 계절마다 감흥이 다르다. 그 중에서도 하회마을이 가장 신비하게 보일 때는 들녘이 황금색으로 물든 가을날의 이른 아침이다. 마을을 솜이불처럼 감싼 낙동강 물안개가 스러지다 마지막으로 산허리에 일직선으로 걸리는 모습은 마을 주민들도 보지 못한 절경 중의 절경. 풍산 류씨들이 부용대가 아닌 화산 중턱에 잠들어 있는 이유다.

안동=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