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상품권 무용지물?… 상인들, 받기 꺼려
입력 2011-09-06 21:55
“5000원짜리, 8000원짜리 사면서 상품권 내면 어떻게 해. 우린 상품권 안 받아.”
6일 오전 찾은 서울 남가좌동 모래내시장의 한 반찬가게 주인은 돈 대신 내민 재래시장 상품권을 보자마자 단번에 손사래를 쳤다. 추석 선물로 들어온 재래시장 상품권인 ‘온누리상품권’을 처음으로 가지고 나와 봤다는 주부 김효선(55)씨는 “가는 상점마다 상품권을 내밀면 ‘안 받는다’고 말하는 상인들이 많아 상품권으로 장을 보기가 쉽지 않다”며 “이럴 거면 도대체 상품권을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역삼동 도곡시장도 상황은 비슷했다. 역시 선물받은 온누리상품권을 가지고 추석 장보기에 나섰다는 주부 정한진(41)씨는 “‘상품권 가맹점’이라고 쓰인 상점을 골라서 들어갔는데도 상품권을 낸다고 하니 주인 표정이 어두워졌다”며 “7000원어치 과일을 샀는데 주인이 ‘상품권을 낼 거면 만원을 채워 주는 게 좋다’고 해 어쩔 수 없이 3000원어치를 더 샀다”고 푸념했다.
전통시장의 수요 진작을 위해 중소기업청이 2009년부터 재래시장 상품권인 ‘온누리상품권’을 발행해 운영하고 있지만 실제로 쓸 수 있는 곳이 드물어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상품권은 현금과 교환되지 않으며 액면금액의 100분의 60 이상을 구매 시 현금으로 잔액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규정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또 상품권이 1만원권과 5000원권 두 종류만 발행되고 있어 5000원 이하의 품목들을 주로 판매하는 영세상인들은 상품권을 받고 현금으로 잔돈을 거슬러 주는 것을 꺼리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삼성의 경우 내수 경기를 살리고 재래시장 상인들을 돕는다는 차원에서 추석을 맞아 직원들에게 20만원씩 모두 490억원어치의 재래시장 상품권을 나눠 줬지만 정작 잘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주거지가 대부분 대도시인 직원들 입장에선 재래시장까지 찾아가는 자체가 ‘일’이기 때문이다.
한 직원은 “상품권을 받기는 받았는데, 마땅히 쓸 데가 없어서 고민 중”이라며 “주말 내내 상품권 사용처를 생각했지만 결국 한 장도 쓰지 못했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시장에서 현금을 선호하다 보니 상품권을 사용하기보다 아예 ‘상품권깡’으로 현금화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한 포털사이트에는 최근 며칠간 온누리상품권을 판다는 게시글이 크게 늘고 있는데 대개 ‘상품권 20만원어치를 18만∼19만원에 판다’는 내용이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온누리상품권 사용에 대해 상인들을 대상으로 연 4만5000명을 교육시키고 있다”며 “가맹점임에도 불구하고 상품권 사용을 거부하는 상점들에 대해선 가맹점을 제외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재래시장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재래시장에서 신용카드 사용 시 소득공제 혜택을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이 또한 영세 상인들이 많은 상황에서 제대로 될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재래시장에서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을 갖춘 업체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