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테레사] 사람 잡는 길거리 흡연

입력 2011-09-06 17:55


지난해 5월 어느 봄날, 찬란한 햇빛이 너무 아름다워 진달랫빛 노방 블라우스에 연보랏빛 모자를 쓰고 집을 나섰다. 길거리 사람들의 발걸음이 여유로웠다. 모처럼 행인의 대열 속에 끼어 잠실 롯데캐슬 앞을 지나는데, 젊은이들이 텔레토비들 모양 옹기종기 모여 담배들을 피우고 있었다. 다른 때는 코를 막고 잘 피해 다녔는데, 그날은 봄의 햇살에 반해 무방비 상태로 걸어가다가 그만 여럿이 한꺼번에 내뿜는 담배연기를 맡고 길바닥에 꽈당 쓰러졌다.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 응급실행을 했음은 물론이다.

이런 황당한 일이 있은 후 나는 지금까지 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머리를 대리석 보도에 부딪쳤으니 피가 났고, 엉덩방아를 찧어 히프가 망가졌으며, 타박상으로 근육이 파열돼 1년 훨씬 지난 지금껏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다. 그냥 보통 장소에서 넘어졌어도 이렇게 오랜 회복기간이 걸릴까. 나처럼 연기에 민감한 체질은 뇌진탕을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 여름은 날씨도 사나운데다 몸도 아파 외출은커녕 겨우 통원치료만 받고 지내는 나날이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나를 이렇게 망가뜨린 담배의 정체를 알아봤더니 정말 흉측한 놈이었다. 담배 연기 속엔 4800가지의 화학물질이 포함돼 있고, 이 중 100여종은 우리 인체의 정상세포를 공격하고 지치게 만드는 등 극히 해롭다고 한다.

이뿐인가. 몸의 면역기능을 떨어뜨려 질병의 공격에 저항하는 힘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여성에겐 더 치명적이어서 폐암, 간암은 물론 여성의 상징인 유방을 괴롭힌다. 몇 년 전, 미국에서 장모가 사위를 고소한 일이 있었는데, 이유는 사위가 담배를 너무 피워 딸이 폐암으로 숨졌다는 것이다. 법원은 간접 흡연의 폐해가 크다는 이유로 장모의 손을 들어 주었다.

물론 옛날 낭만파 시절에 담배 피우는 것이 멋있게 묘사되곤 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긴 파이프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멋있어 보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연극인 박정자씨가 극중에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관객을 끌어들이는 장치이기도 했다. 하얀 대리석 같은 예쁜 손에 담배를 끼고 연기할 때는 그녀의 손끝도 연기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거기서 피어 오르는 연기(煙氣)는 하나의 연기(演技)일 뿐이다.

우리도 이제 바뀔 때가 됐다. 아름다운 국제도시 서울, 그것도 수많은 유동인구가 움직이는 대로변에서 조폭들마냥 떼를 지어 서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도시의 질을 떨어뜨린다. 길을 걸으면서 피우는 흡연도 마찬가지다. 각 지자체마다 조례를 제정해 버스정류장 같은 곳을 금연구역으로 운영한다고 하지만 길거리 흡연 자체를 막는 곳은 없다. 나는 새로 뽑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길거리 흡연’ 금지를 공약하는 후보에게 한 표를 던지고 싶다.

김테레사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