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의 시편] 깊음의 영성

입력 2011-09-06 17:47


영성의 추구는 깊음에 대한 추구이다. 영의 세계는 깊음의 세계다. 영혼은 내면에 있고, 깊은 곳에 있다. 그래서 영혼은 깊음을 좋아한다. 깊은 바다가 우리를 부르듯이 깊음의 세계가 우리를 부른다. 깊음을 갈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깊음의 세계는 하나님의 세계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은 깊음을 갈망하게 되어 있다. 깊음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성령님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신다(고전 2:10).

리처드 포스터는 “오늘날 절실히 요청되는 사람은 지능이 높거나 혹은 재능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깊이가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피상적인 삶을 떠나 깊이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깊음의 세계에 들어가려면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기본을 무시한 채 깊음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 기본에 충실하다는 것은 근본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근본에 충실하다는 것은 본질에 충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깊음으로 들어가는 문은 십자가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기본이요, 근본이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본질이다. 십자가 없는 깊은 영성은 모조품이다. 십자가는 깊은 영성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십자가는 기본이지만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다. 키르케고르의 말처럼 우리 인생은 나이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시작된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깊이다. 속도를 따라 움직이는 시대 속에서 속도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영혼은 지나치게 빠른 것을 싫어한다. 영혼은 느린 것을 좋아하고, 깊은 것을 좋아한다. 속도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속도는 불안감을 준다. 속도는 우리를 두렵게 한다. 속도는 우리를 조급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깊음의 세계는 질서가 있다. 안정감이 있다. 평화롭다. 고요하다. 깊음의 세계는 자족의 세계다. 깊음의 세계는 영적인 부요의 세계다. 그런 까닭에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세계다. 깊음의 영성은 깊은 깨달음을 준다. 깊은 맛을 준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렸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 그가 경험한 것은 깊은 세계였다. 그가 경험한 깊은 세계란 고기를 많이 잡았다는 기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진면모를 발견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 자신의 죄인 된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을 뜻한다. 그래서 그는 배와 물고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아갔다. 예수님은 그를 깊은 세계로 이끄시기 위해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명하셨다. 우리 함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도록 하자. 깊은 영성을 추구하도록 하자. 깊은 세계로 여행을 떠나도록 하자.

(LA새생명비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