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 보는 대구육상 9일… 별은 빛났건만 짙어진 그림자

입력 2011-09-06 21:47

세계 이목을 집중시킨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승자의 환희와 패자의 눈물 속에 막을 내렸다. 하지만 9일간의 달구벌 열전이 남긴 여운과 파장은 아직 남아 있다. 잘 몰랐던 육상의 재미를 알려줬지만 국내 육상 관계자들에겐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시키며 과제를 남기기도 했다. 잊지 못할 ‘베스트(Best)5’와 ‘워스트(Worst)5’를 정리해 봤다.

오랫동안 못잊을 베스트

1 자원봉사자 헌신=당초 우려와 달리 이번 대회는 관중몰이에 성공했다. 조직위에 따르면 전체 입장권 판매량이 46만4381장으로 집계됐다. 물론 입장권의 80%가량이 기관과 기업, 학교 등에 단체로 팔리긴 했지만 대회 성공을 바라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사표가 9.33%에 그쳤다. 특히 대회 기간 내내 여러 분야에서 헌신적인 활약을 펼친 자원봉사자 3000여명의 노력은 금메달감이다.

2 금지약물 제로=이번 대회는 출전 선수 가운데 금지 약물을 사용한 사례가 한 건도 적발되지 않은 ‘클린 대회’로 기록됐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과 대회 조직위는 참가하는 모든 선수를 대상으로 ‘선수생체여권제도’를 처음 실시했다. 혈액 검사를 실시해 프로필을 만든 뒤 도핑 테스트에서 얻은 결과와 비교해 금지 약물 사용 여부를 검사하는 것으로 앞으로도 사용될 전망이다.

3 새로운 스타들의 탄생=이번 대회의 특징은 기존의 강자들이 추락하고 신예들이 치고 올라오는 것이다. ‘데일리 프로그램의 저주’라는 소문도 돌았으나 사실상 세대교체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와 남자 5000m와 1만m의 케네니사 베켈레(에티오피아)는 오랫동안 1인자로 군림해 왔으나 이제 전성기가 지났음을 보여줬다. 반면 1인자들이 권좌에서 내려간 사이 남자 1만m의 이브라힘 제일란(에티오피아)과 남자 장대높이뛰기의 파벨 보이치에호브스키(폴란드) 등 신인들이 자리를 꿰찼다. 물론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처럼 여전히 빛난 스타도 있었다.

4 그레나다·보츠와나 약소국 딛고 금메달=카리브해의 소국 그레나다의 키라니 제임스와 아프리카의 소국 보츠와나의 아맨틀 몬트쇼는 각각 남녀 400m에서 우승하며 자국에 사상 첫 금메달을 안겼다. 보츠와나는 세계에서 AIDS 감염 비율이 가장 높은 곳으로 몬트쇼는 “조국에 희망을 줄 수 있어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또 인구 9만 명에 불과한 섬나라 그레나다는 제임스가 400m 최연소로 금메달 딴 날을 국경일로 지정하기로 했다.

5 인간미 넘치는 투혼=냉정하게 승부를 가리는 스포츠지만 선수들은 따뜻한 동료애와 인간미를 발휘했다. 여자 마라톤에서 케냐의 에드나 키플라갓이 넘어지자 팀 동료인 샤론 체로프가 달리는 것을 멈추고 괜찮은지를 살폈다. 진한 동료애를 보인 케냐 선수들은 여자 마라톤 금·은·동을 휩쓸었다. 또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가 장애인 선수 최초로 세계선수권대회 메달을 획득하며 인간승리의 표본이 됐다. 이외에 쿠바의 다이론 로블레스의 손에 막혀 우승을 놓쳤던 중국의 류샹은 ‘대인’다운 너그러운 모습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빨리 잊고만싶은 워스트

1 대구시·조직위의 운영 미숙=이번 대회는 운영 면에서 매우 미숙했다. 여자 마라톤에서 종소리와 총소리 두 가지로 출발신호를 하는 바람에 선수들이 우왕좌왕했고, 여자 400m 결승 직전에 허들을 설치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이 속속 벌어졌다. 또 청소년들이 트랙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 정도로 경기장 출입 관리가 허술했다. 반면 보안 점검을 이유로 국내외 기자들을 쫓아내는가 하면 자원봉사자와 선수가 경기장 안에 남아 있는데도 문을 잠가버리는 일도 발생했다. 게다가 조직위는 ‘모르쇠’로 일관하다 국내외 언론의 비판을 더욱 초래했다.

2 편의시설 부족=경기장 내부의 편의시설 부족은 대회 내내 지적됐다. 경기장 안의 매점과 식당이 가격만 비싸고 구색 맞추기에 그쳤기 때문이다. 당초 대회에 맞춰 인근에 대형마트와 패스트푸드점이 오픈할 예정이었으나 공사 지연 등으로 미뤄지면서 관객들은 불편을 겪어야 했다. 이외에 지하철역과 경기장을 오가는 셔틀버스의 부족과 주차장 부족 등 편의시설 문제는 대구에 대한 인상을 좋지 않게 만들었다.

3 아프리카 선수들 성추행 사건=선수촌 업무를 돕는 아르바이트 여대생 2명이 아프리카의 알제리 선수 2명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알제리 선수들은 자국의 관습대로 인사하자며 여대생들에게 강제적인 신체 접촉을 시도했다. 다음날 여대생들의 고소로 이들은 불구속 입건돼 출국금지를 당했다. 알제리의 코치와 선수들로부터 사과를 받은 여대생들의 고소 취하로 이들은 뒤늦게 출국할 수 있었다.

4 부정출발 논란=이번 대회 최고스타인 우사인 볼트가 부정 출발로 실격되는 최대 이변이 연출되자 IAAF의 ‘부정 출발 단번 실격(원 스트라이크 아웃)’ 규정에 대한 찬반 논란이 일었다. 내년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영국 언론은 규제 완화를 주장했으나 라민 디악 IAAF 회장은 “부정 출발 규정 개정 없다”고 잘라 말했다.

5 개최국 한국 부진=한국은 이번 대회 10개 종목에서 10명의 결선 진출자를 내겠다는 ‘10-10’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결과는 남자 경보 20㎞에서 김현섭이 6위, 경보 50㎞에서 박칠성이 7위에 올랐을 뿐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해 한국 육상의 초라한 현실을 새삼 확인시켜줬다. 다만 400m 계주 팀과 1600m 계주 팀, 남자 10종 경기, 남자 경보 50km에서 한국 신기록을 작성한 것이 위안거리다. 이에 따라 한국은 스웨덴(1995년)과 캐나다(2001년)에 이어 세 번째로 ‘노메달 개최국’으로 기록됐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