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 분쟁의 역사… ‘섬 쟁탈전’ 주변국들 잦은 무력 충돌

입력 2011-09-06 23:15

남중국해를 둘러싼 분쟁의 역사는 길고도 복잡하다. 가시적인 분쟁은 2차대전 때 시작됐다. 군국주의 일본은 난사군도를 자국 관할 아래에 둔다고 선언했다. 이에 1933∼1939년 난사군도를 지배한 프랑스가 반발하고 나섰다. 하지만 일본은 1941년 태평양 전쟁 발발과 함께 난사군도를 무력으로 점령한 후 전쟁 종결 때까지 지배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은 1949년 난사군도와 시사군도에 대한 프랑스의 모든 지배권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베트남은 지금도 이곳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로 ‘지리적 접근을 통한 실질적인 주권행사’를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1951년에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따라 일본이 난사·시사군도에 대한 모든 권한을 포기했다.

이 해역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20세기 초인 1909년에 이미 시사군도의 일부 섬을 차지했다. 1946년에는 난사군도의 이투아바섬과 시사군도의 푸란섬을 각각 점령했다. 1950년대 들어 시사군도 섬들도 추가로 차지했고 1974년에도 무력을 앞세워 베트남군이 점령한 시사군도 섬들을 빼앗았다.

베트남은 이 같은 행위는 불법적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1974년 당시에는 중국과 미국이 공모를 했다고 비판했다. 1978년에는 베트남과 필리핀이 난사군도를 놓고 협상을 벌였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1988년에는 중국과 베트남 해군 사이에 난사군도 존슨 암초에서 무력충돌이 벌어져 베트남 함정 수척이 침몰하고 해군 70여명이 사망했다.

현재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는 각각 난사군도의 상당수 섬과 암초를 나눠 갖고 있다. 인도네시아, 브루나이도 일부 암초를 차지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난사군도에서 가장 큰 섬인 이투아바섬(太平島)은 대만이 점령한 채 군사시설을 구축해 놓았다.

중국은 이러한 사실을 의식해 베트남, 필리핀과 한창 갈등을 빚던 지난 6월 “난사군도의 주권은 양안 공동의 책임”이라며 대만에 공동전선을 제의하기도 했다. 대만을 일개 자국의 성(省)으로 취급하는 중국이 중화권 연대 카드를 꺼낸 것은 상황이 그만큼 복잡하다는 방증이다. 이처럼 남중국해 인접 국가들은 중국과 분쟁을 겪는 한편으로 때로는 여타 국가들과 갈등을 빚기도 하면서 국익을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