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젤 서희, 최초 넘어 최고 꿈꾸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솔리스트 서희 인터뷰
입력 2011-09-05 16:37
“최초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후에 실력이 향상되고 최고가 되어가는 일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2005년 세계 3대 발레단 중 하나인 아메리칸발레시어터에 단역 무용수로 입단한 뒤 2009년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역을 맡고 솔리스트로 승격했다. 이후 지난 6월에는 대표적 고전발레 ‘지젤’의 지젤이 됐다. 발레리나 서희(24)가 착실히 쌓아가고 있는 커리어는 그를 지켜봐왔던 국내 발레계 관계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발레단에서 휴가를 받고 일시 귀국한 발레리나 서희(24)를 5일 서울 청담동에서 만났다.
“저에겐 ‘나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인식이 분명히 있어요. 저희 발레단에 저 말고는 한국 사람이 없으니까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한국인은 어떻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고. 저 말고도 (해외의)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시는 분들도 그렇지 않을까요.”
어린 나이에 성공한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서희는 20대 초반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말투와 태도를 지녔다. 목소리는 조용조용했으나 단호했다. “누가 저한테 ‘최고의 지젤’이라고 했다면 틀림없이 부담스러웠을 거예요. 하지만 ‘최초의 지젤’이라는 건 괜찮았어요. 최초라는 건 그만큼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아요.”
그는 여타의 무용수들보다는 조금 늦은 나이인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발레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것도 우연한 기회에 학교의 방과 후 활동에 참여하게 되면서였다. 남다른 재능을 보이면서 발레는 어느덧 그의 길이 되었다. 예술중학교를 거쳐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학교에 입학한 것도 마치 운명처럼 자연스러웠다.
“저는 어려서부터 (발레를) 잘 하는 편이었어요. 저보다 먼저 시작한 친구들도 많았는데 좋은 역할을 받았고 점수도 좋았거든요.”
하지만 자신이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실기시험을 치면 항상 나에겐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말 천재적인 무용수들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전혀(웃음). 오히려 제가 했던 작은 역할들이 저를 만든 것 같아요. 저희 발레단은 예외 없이 코르 드 발레(군무단)부터 시작하거든요. 코르 드 발레를 할 땐 ‘이게 뭐가 도움이 되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엔 어깨가 무거워지는 역할을 받으니 예전에 했던 군무가 정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두 달 동안의 긴 휴가를 받은 그의 요즘 일상은 어떻게 흘러갈까. 휴가라고는 하지만 쉴 틈이 없었다. 지난달 호주에서 국내의 한 백화점 광고 촬영을 마친 뒤로는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시간 낭비 하지 않아 좋다”는 게 서희의 말이다.
“발레가 잘 되는 날엔,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해요. 연습이 잘 안되거나 아프다거나 하면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별로 안 좋아요. 하지만 발레리나가 아닌 인간으로서도 살아야 하잖아요. 너무 발레에만 몰두하지 말아야지 하는데 그렇게 되질 않아요.”
며칠 전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는데 그게 몇 년 만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열정만은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하는 그다. 갸름한 얼굴에 커다란 눈망울이 유난히 빛났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