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육상 무엇을 남겼나-달구벌에서 뜬 별, 지는 별] ‘세월의 바’ 못넘은 장대높이뛰기 남녀

입력 2011-09-05 20:04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스타들의 무덤’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이변이 속출한 대회였다. 대회 개막 전부터 육상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스타들이 몰락하는 대신 새로운 스타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달구벌에서 가장 먼저 추락한 스타는 2009년 베를린 대회 남자 장대높이뛰기 정상에 올랐던 스티븐 후커(29·호주)였다. 베를린 대회 당시 5m90을 넘으며 우승을 차지한 후커는 개막 첫날 예선 탈락했다. 여자 장대높이뛰기에 출전한 옐레나 이신바예바(29·러시아)는 베를린 대회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애썼으나 명예 회복에 실패했다. 첫 시도인 4m65를 넘는 데까진 성공했으나 베를린 대회에서와 마찬가지로 4m75와 4m80의 바를 잇따라 넘지 못했다.

1만m와 5000m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장거리 황제 케네니사 베켈레(29·에티오피아)는 레이스를 다 펼치지도 못했다. 1만m 경기를 중도 포기한 후 5000m는 경기 전 기권해 출발선에 서보지도 못했다. 여자 세단뛰기 3연패를 노리던 야르헬리스 사빈(27·쿠바)도 부상으로 기권했고, 여자 200m 4연패를 노리던 엘리슨 펠릭스(26·미국)는 베로니카 캠벨 브라운(29·자메이카)에 덜미를 잡혔다.

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와 류샹(28·중국)은 스타들이 몰락하는 와중에도 그나마 이름값을 한 경우다. 볼트는 100m에서의 실격으로 대회 2연속 3관왕에는 실패했지만 200m와 400m 계주에서 2관왕을 차지하며 스타로서의 존재감을 이어갔다. 류샹은 다이론 로블레스(25·쿠바)가 팔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우승을 놓치긴 했지만 로블레스를 원망하지 않으며 ‘대인’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반면 볼트가 없는 100m에서 우승한 요한 블레이크(22·자메이카)는 차세대 자메이카 단거리를 이끌 기대주로 떠올랐다. 계주 400m에서도 세 번째 주자로 나서 볼트와 함께 대회 2관왕을 차지한 블레이크는 내년 런던 올림픽 최대의 다크호스다. 400m에서 베를린 대회 우승자인 라숀 메리트(25·미국)를 꺾은 키라니 제임스(18·그레나다) 역시 이번 대회를 통해 스타로 발돋움했다. 제임스는 막판 스퍼트로 메리트를 따돌리며 44초60으로 결승선을 통과해 역대 400m 최연소 우승자가 됐다.

‘성별 논란’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여자 800m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던 카스터 세메냐(20·남아공)를 꺾은 마리아 사비노바(26·러시아)도 빼놓을 수 없다. 사비노바는 여자 800m 결승에서 세메냐를 막판 스퍼트 끝에 따돌리고 역전 우승해 대회 마지막 날 최대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이신바예바가 추락한 여자 장대높이뛰기에서는 파비아나 무레르(30·브라질)가 새로운 ‘미녀새’로 등극했다.

대구=김현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