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법무부·스위스 은행 또 충돌… “탈세혐의 미국인 고객 계좌정보 넘겨달라”

입력 2011-09-06 00:59

미국 정부와 스위스 은행 간의 2차전이 벌어졌다. 미국이 자국민 탈세 조사 명분으로 스위스 은행 10곳에 미국 고객들의 구체적인 계좌정보를 넘겨달라는 최후통첩을 보냈기 때문이다. 고객에 대한 철통 보안 전통을 지켜온 스위스 은행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미국의 이런 요구는 2009년에 이어 두 번째다.

로이터통신은 4일(현지시간) 미 법무부가 지난달 31일 제임스 콜 부장관 명의로 스위스 2대 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와 9개 중소형 은행에 미국인의 탈세 관련 자료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미 법무부는 이 서한에서 6일까지 자료를 보내지 않을 경우 은행들을 미국 법에 따라 기소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측이 요구하는 것은 이들 은행에 지난 2002년부터 2010년 사이에 미화 5만 달러(약 5300만원) 이상을 예치한 개인 및 펀드의 이름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위스 언론은 이 기준에 해당하는 계좌가 최소 수만 건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정부는 2년 전에도 스위스 최대 은행인 UBS에 탈세 혐의가 있는 미국인들의 자료를 요구했다.

당시 UBS는 미국 내 영업을 계속하기 위해 7억8000만 달러(약 8000억원)에 달하는 벌금을 냈고, 250개 이상의 고객 계좌 정보를 미국 측에 넘겨주기로 합의했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양국 간 갈등 해소를 위해 4450개 계좌 정보를 추가로 넘겨줬다. 그러나 당시 UBS에 계좌를 가진 미국인들이 다른 스위스 은행으로 자산을 옮기는 바람에 미 정부의 탈세 조사는 실패로 돌아갔다.

스위스 신문 존탁스차이퉁은 “크레디트스위스 등 스위스 은행들이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UBS보다 훨씬 더 강도 높은 제재를 받게 될 것”이라며 “벌금이 최대 26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번엔 스위스 은행 측도 미국 요구에 순순히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스위스은행가협회(SBA) 패트릭 오디에르 회장은 5일 바젤에서 열린 SBA 회동에서 “미국과 스위스 양국 정치인들은 현존하는 협정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면서 “미국은 이를 존중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이 이번에 강하게 대응하는 이유는 UBS 사건 이후, 이탈리아 캐나다 등 다른 국가들도 탈세 혐의가 있는 자국 고객들의 계좌 정보를 넘겨 달라고 요구하는 등 스위스 은행들의 영업 전략인 비밀주의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사건에 대해 “미국이 스위스 은행의 비밀주의를 다시 한번 무력화시키기 위한 압박”이라고 지적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