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인연으로 시작했던 안철수-박원순, 이젠 ‘MB 비판자’로… 사이 어긋나

입력 2011-09-05 15:11


‘인연에서 악연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관계를 요약하면 이렇다. 안 원장과 박 상임이사는 2000년대 초 각각 이 대통령과 ‘좋은 인연’을 맺었지만, 1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나란히 ‘재야의 비판자’가 됐다.

안 원장은 지난달 초 한 인터뷰에서 “공정과 상생은 대통령이 꺼내신 화두인데, 화두만 꺼내고 후속 조치가 없으면 분노가 더 커진다. 차라리 안 꺼내는 게 낫다”고 했다. 박 상임이사는 2009년 국가정보원의 민간 사찰 문제를 제기한 뒤 “현 정부 들어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안 원장은 2003년 서울시장이던 이 대통령과 함께 ‘제8기 서울대 평의원’이 됐다. 학사운영 의결권을 갖는 평의원회에 첫 외부인사로 나란히 초빙됐고, 2년간 같이 활동했다. 이 대통령이 2006년 9월 본격 대선 행보로 ‘IT 비전 탐사’에 나설 때 가장 먼저 방문한 기업도 안철수연구소였다. 또 이명박 정부의 미래기획위원회와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에 참여하고 국무총리 후보로도 검토됐다.

하지만 안 원장은 근래 들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 수위를 꾸준히 높여왔다. 타깃은 이 대통령의 ‘국정철학’인 공정과 상생이다. 지난 5월 국회 강연에서 그는 “우리나라 중견기업은 0.2%에 불과할 만큼 전멸했다. 대기업의 약탈행위를 정부가 방조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말이 지난달 인터뷰에선 “무법천지”란 표현으로 강해졌고, 4일엔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건 현재 집권세력”이라며 현 정부를 직접 겨냥했다.

박 상임이사는 2002년 서울시장에 당선된 이 대통령이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곧바로 제안서를 작성해 찾아갔다. “월급을 기부하시라”고 제안해 흔쾌히 받아들여졌고, 4년간 시장 월급은 환경미화원 자녀를 위한 아름다운재단 등불기금에 입금됐다.

훈훈하게 시작된 관계가 어긋난 단초는 박 상임이사가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에 위촉되면서라고 한다. 그의 한 측근은 “임기 안에 끝내려고 공사를 서둘러선 안 된다는 박 상임이사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현 정부 들어선 희망제작소가 추진한 여러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고 했다. 박 상임이사는 3년 전 국정원이 시민단체를 사찰한다고 비판했다가 국정원으로부터 2억원의 명예훼손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당초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복지 포퓰리즘과 재정 건전성에 관한 ‘무상급식 2라운드’이길 기대했던 청와대는 두 사람의 등장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지금은 기성 정치권이 타격을 입고 있지만, 언제 화살이 정부와 청와대로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모두 말을 아끼며 영향과 변수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당장 이번 추석이 문제다. 이 대통령은 방송을 통해 공생발전에 관한 추석 메지시를 전할 계획이지만, 이미 추석 밥상머리 화제는 ‘안철수와 박원순’이 돼버렸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