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군사기지 정치학
입력 2011-09-05 17:38
군사기지는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존재이지만 지역사회에서는 ‘혐오시설’로 여겨지기 일쑤다. 도심개발이 제한되고 환경오염이 심화되는 등 불이익과 불편함이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8년 3월 경기개발연구원이 발표한 ‘군 주둔에 대한 지역주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54%는 ‘군 주둔은 필요하지만 다른 지역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지역에 많은 도움을 주며, 꼭 필요한 시설’이라고 답한 비율은 23.1%에 불과했다. 또 48.4%는 ‘현재 주둔하고 있는 부대는 이전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8.8%만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모든 군사기지들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건 아니다. 2007년 신도시 개발계획으로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육군종합행정학교와 학생군사학교 등의 이전이 결정되자 이들 부대를 유치하기 위해 지자체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군사시설이지만 지역경제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작용한 덕분이다.
군으로서는 유치 희망지역에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 그러나 주둔여건을 갖춘 곳이 많지 않다. 군사기지는 첨단무기의 발달로 더 이상 위치가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긴 하지만 여전히 전략적 요충지에 있어야 제격이다. 아울러 군수지원도 쉽게 이뤄지고 지속적인 훈련도 가능한 곳이어야 한다. 이런 요건을 갖춘 곳을 찾다보니 기지를 선정할 때마다 혹독한 통과의례를 치러야 한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사업과 해군기지가 들어설 제주 강정마을의 갈등이 대표적 사례다.
군사기지 설치 문제로 사회적 갈등을 겪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만이 아니다. 2002년 미 의회 회계감사원(GAO) 조사에 따르면 미국도 군사기지의 80%가 주변지역의 도시화로 민·군 갈등을 겪고 있다. 미군 기지가 많은 일본도 주민 불만이 고조돼 있는 곳이 적지 않다. 우리와 다른 점이라면 심각한 양상으로 표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군사기지 설치는 개발이익과 환경, 국가이익과 지방이익이 충돌하는 일반적인 공공갈등의 성격에 안보와 평화라는 가치까지 합쳐져 당사자들 간 합의 도출이 더 어렵다. 자칫하면 진보와 보수의 이념 대결, 국가와 시민사회의 균열로 확대돼 그 어떤 사회갈등보다 더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은 이런 위험성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민해왔다. 일본은 1952년 미군정이 끝나자마자 미군에 의한 지역 주민 피해와 손실보상을 위한 민사특별법을 제정했고 53년에는 주일미군의 적법한 활동에도 농림과 어업 등에 손실이 끼쳐졌다면 이를 정부가 보상하는 법을 마련했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군사기지의 임무와 시민사회의 발전을 양립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국방부 산하에 경제조정처
(Office of Economic Adjustment)를 만들어 특정 군사기지가 민·군 갈등에 노출되거나 그런 위험이 있을 경우 즉각 조정에 나서도록 했다. ‘군사기지 정치학’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가 만들어진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연구를 통해 군사기지를 둘러싼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매번 주먹구구식 대응으로 군사기지 건설비용이 당초 계획보다 더 많이 투입되고 주민과 군의 감정적인 골은 더 깊어지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군사기지를 둘러싼 갈등이 비생산적이고 파괴적인 양상으로 비화되지 않고 합리적으로 접점을 찾아가는 선순환 과정이 모색돼야 한다. 군에만 맡겨놓을 일이 아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