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87) 기러기 날아가고 나면

입력 2011-09-05 17:37


밤기운이 서늘해져 풀잎에 이슬이 맺히면 백로(白露)다. 순진한 아이가 “이슬은 풀이 흘리는 땀”이라고 말한다. 이슬은 땀땀이 반짝인다. 영롱해도 그러나 가뭇없다. 삼국지의 조조는 시에 한숨을 싣는다. ‘술잔 앞에서 노래하지만/ 인생이 그 얼마나 되는가/ 견줘보니 아침 이슬 같구나.’

가을 이슬은 흔적 없이 사라지지만 기러기는 자국을 남긴다. 조선 중기의 화가 이징이 그린 이 고적한 산수화를 보라. 하늘 구만리 울어 예다 강가 모래톱에 편대를 이룬 채 날아드는 기러기는 가을이 깊음을 알린다. 언덕 위에 집 한 채, 팔작지붕 겹처마에 중층 누각이 버젓한데 선비 하나 오도카니 좌정해 있다. 그는 기러기의 안착을 무연히 지켜본다. 과연 무엇을 헤아리는가.

소동파가 대신 읊는다. ‘인생 이르는 곳 어딘지 아는가/ 기러기 진창을 밟은 자리와 같다네.’ 기러기가 앉으면 발자국이 어지럽다. 살아서 우리가 헤맨 편력과 무에 다를까.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족적이다. 그것이 한번 뿐인 인생이라 동파는 안간힘 다한 생애를 마지막 구절로 위로한다. ‘기러기 날아간 뒤에야 동서를 따지겠는가’

그림은 동정호 주변의 승경을 소재로 한 소상팔경 중에 하나다. 구름 사이 떠다니는 산들이 뾰족하고 말갛게 펼쳐진 강변이 그윽하다. 기러기 날아오른 뒤라야 저 선비 일어날까. 돌아서는 선비 뒤로 발자취는 강물이 지울 것이다. 먼 하늘 날아가는 기러기가 강물에 그림자를 드리울 테지만 흐르는 강물은 그림자조차 남겨둘 마음이 없다. 나 떠나고 남을 자취가 두렵거나 부끄러운가. 풀잎에 맺힌 백로의 이슬이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